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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재 Jan 12. 2024

자격증만 믿으면 안되는 이유

자격증이 실력과 비례하지 않는 현실


글씨를 쓰기 시작한 지 벌써  14년이 되었다. 13년 넘게 캘리그라피 강의를 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들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의견을 전해 볼까 한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글씨를 아니, 정확하게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으신 분들의 니즈가 모두 같을까? 예쁘고 멋진 글씨를 쓰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일 것 같지만 의외로 현장에서 상담해 보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건 막연하게 캘리그라피 하면 떠오로는 이미지를 따라온 것뿐이다. 잘 쓰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 안에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는 모두 달랐다. 니즈가 다르면 상담 방향도 달라야 하고 수업방향도 달라져야 하기에 일단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하는 목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등록부터 하고 붓을 들어 선긋기부터 시작하면 빛의 속도로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수업 시작 전에 상담을 조금 길게 하는 편이다. 많은 분들이 가볍게 시작하고 빠르게 포기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강의를 하며 만난 분들 중 조금 난감했던 케이스를 전해볼까 한다. 이를 통해 캘리그라피가 버킷 리스트에 있는 분들의 시행착오가 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안티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불편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Q : 취미로 좀 배워서 자격증도 따고 돈도 벌어보고 싶은데 얼마나 배우면 될까요?

A : 취미로 좀 배워서 자격증도 따고 돈도 벌고 싶으신 거군요. 캘리그라피 자격증은 민간자격증이라서 취미로 적당히 배우셔도 자격증 취득은 가능하세요.(살짝 미소 한번 지어줍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돈을 버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취미로 적당히 배우고 자격증을 따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주변에 잘 쓰는 작가님들이 너무 많아서(여전히 미소에 눈웃음까지 장착하고) 취미로 배워 수업을 하고 돈을 버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기간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오셨을까요?

Q : 아..네..(약간 당황하셨다.) 다들 몇 개월만 배우면 자격증 딴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어떤 곳은 자격증 따면 수업할 수 있게 연결도 시켜 주고 그런다는데 여기는 그렇게는 못하나 봐요?(아…질문에 가시를 박으셨다.)

A : (하지만 이 정도 질문에 당황하지 않고 소신발언하는 나는 생존형 극 I다.) 정말요?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능력은 없어서요. 취업까지 고려하신다면 그분께 배우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입 밖으로 꺼내 놓지 못한 말을 삼킨다_ 대통령도 해결 못하는 취업난을 자격증 하나로 해결해 주는 분이 계시다면 당연히 그분께 배워야죠. 암요! 제가 졌습니다.) 물론 몇 개월 만에 자격증 취득은 가능하세요. 다만 자격증이 바로 수입으로 연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 지어 말씀드리기가 좀 어렵네요. 다만 어떻게 준비를 하면 좋은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향은 제시해 드릴 수 있습니다.

Q : 그래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데요?

A :  아하하하 그건 수업을 받으시고 자격증을 신청하신 다음에 하나씩 가이드해드립니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상담을 마무리하고 가신 분은 다시 오지 않으셨다. 첫 만남에 13년의 노하우를 얻어가려다 실패한 분이다. 마음이 조금 씁쓸한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때는 자격증이 실력을 입증해 주는 거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야무지게 현실을 마주하고 정신을 차렸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상담할 때 허상을 보고 오시는 분들께 시간과 비용을 아껴드리는 것이 먼저 길을 걸어온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했다. 잠깐의 수강료에 눈이 멀어 다 될 것처럼 등록받아 놓고 수업을 진행한다면 그 후폭풍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캘리그라피 강사라는 직업은 글씨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단순히 기술을 전하는 수업이 아닌 마음을 담아 시간을 쏟는 일이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글씨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모든 순간에 진심인 이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건넬 수도 있는 일이다. 캘리그라피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나만의 삶의 방법이다.


사진출처_온재캘리


정말 대단한 작가님께 배운다면 작가 데뷔에 취업까지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유명한 작가님께 배우기엔 나의 그릇이 작았고 지불할 비용이 없었기에 안타깝게도 그런 경험을 갖지 못했다.(슬픈 현실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된 이유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캘리그라피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14년째 글씨와 연애 중이다. 여전히 설레고 꿈을 꾸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글씨를 쓰는 일이 업이어도 좋고 취미여도 좋다. 기한을 정해 두고 100 터 달리기를 하듯 도전하지 않기를 바란다. 캘리그라피는 장거리 마라톤이다. 그러니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즐길 수 있는 마음으로 시작하길 바란다.



캘리그라피를 왜 배우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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