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 자격증 선택일까? 필수일까?
캘리그라피 자격증 꼭 필요할까?
꼭, 반드시, 절대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캘리그라피 자격증이 꼭 필요하냐는 질문에 바로 답하기가 조심스럽다.
어떤 경우엔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또 다른 케이스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분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꼭 자격증이 필요한가요? 어떤 유명한 작가님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은 자격증 없이도 충분히 다 하셨다며 꼭 필요하진 않다고 하던데 왜 다들 자격증 과정을 안내하나요?’
너무 답이 명쾌해서 당황스러우시겠지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해 줄 수 있다.
그분은 이름이 이미 브랜드이기 때문에 자격증이 필요 없다. 이름석자에 실력 경력 모든 것이 증명이 되니 그분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평범한 캘리그라퍼들이 클라이언트에게 어필하는 방법은 자격증뿐이다. 무엇으로 나의 자격을 증명할 수 있을까? 기업이나 단체, 교육기관 같은 곳에서 강의를 하고자 한다면 자격증은 필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공식적인 곳에서 수업할 계획이 없고 취미생활 정도. 또는 지인들에게 판매하거나 작가가 목적이라면 자격증 유무는 크게 의미가 없다.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는 일이다. 자격증이 실력과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클라이언트에게 스스로를 증명할 방법은 서류한 장에 찍혀 있는 자격요건뿐이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노선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자격증을 목표로 한다면 여기서부터 또 하나의 큰 허들을 넘어야 한다. 어느 협회의 어떤 자격증을 따야 할까? 가장 심플하게 생각해 보면 공신력 있는 협회에서 가장 유명한 선생님께 배우면 좋다는 것쯤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의 지갑 사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럼 집에서 가장 가깝고 가성비 좋은 곳이 답일까? 이 또한 팩트를 이야기하면 씁쓸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배울 경우 나의 활동지역은 집 근처가 되기 어렵다. 배우러 다닐 때는 편하겠지만 근처에서 강의를 하긴에 눈치가 보일 것이다. 실력으로 우위를 선점하기 어렵다면 같은 상권에서 시작하기엔 리스크가 클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비용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최소의 비용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면 나 또한 수강생에게 그 금액 이상 받을 수 없다. 내가 투자한 만큼 받는다고 생각하고 시작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무조건 고가의 수업을 들으라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살짝 부담되더라도 다음에 강의를 했을 때 열정페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찾길 추천한다.
자격증을 염두하고 시작하는 분들은 대부분 수익창출을 염두하고 계신 분 들이다. 그렇다면 자격증과정에 드는 비용도 고려해야 하지만 커리큘럼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강사가 써 주는 체본만 따라 쓰고 작품 몇 개 해 본 경험으로는 현장에서 버텨내기 어렵다. 체본위주의 수업이라면 최소 1년에서 2년 이상 배우고 쓰면서 글씨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수업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명확한 데이터와 교재가 있는 협회를 선택해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을 추천한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 본인의 성향에 맞는 곳을 찾아서 소화해 내는 것이 핵심이다.
고가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유명한 작가님이 써주는 체본을 따라 연습하며 작가의 길을 가는 것도, 대중적인 글씨를 교재로 만들어 데이터와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협회를 통해 강사의 길을 가는 것도 모두 캘리그라퍼의 길이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고를 논할 가치가 없는 문제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본인의 니즈를 정확하게 알고 길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부분에 있어서 대충 남들이 많이 한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 더 알아보고 비교도 해 보고 수강생의 입장과 강사의 입장 모두 시뮬레이션을 해보길 바란다. 당장 접근성이 쉽다거나 유명하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렇게 시작해서 좌절하는 분들을 너무 많이 봐온 경험에 도움을 주고자 글을 쓴다.
덕업일치.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업으로 삼은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맛도 못 보고 실망해서 돌아서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격증에 관한 이야기도 풀어본다. 세상에 그 어떤 분야도 무조건은 없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시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