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가까이 있는 듯 하지만 멀어 보이고,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 캘리그라피를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낀 것들이다. 단체 수업에서 꼭 하는 질문이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떠보기 위한 질문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캘리그라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자료조사라는 이유가 더 크다. 보통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깊이를 파악해야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의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캘리그라피가 뭘까요?”
강의 시작과 동시에 하는 질문이다.
“글씨 예쁘게 쓰는 거요.”
맞는 말이지만 빙산의 일각에 해당되는 답이다.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캘리그라피에 대해 막연하게 예쁘게 글씨 쓰는 것 정도로 알고 있다. 그들이 어느 분야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생활을 이어가는지 짐작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경력단절 주부들이 집 근처 어딘가에서 적당히 자격증 따서 휘어 갈겨쓰는 글씨를 캘리그라피라고 이름 붙여 활동한다고 여기는 눈치다. 물론 절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자신은 없다. 분명 그런 분들도 있고 직접 눈으로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어느 분야든 숟가락만 얹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고 그들도 우리 업계에 일부일 뿐이다.
제대로 배운 다음 소신을 갖고 본인이 원하는 분야에서 노력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글씨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과연 돈을 벌 수 있는 포지션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깊이 생각하진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캘리그라피의 다양한 분야 중 알고 있는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분야는 강사다. 개인 작업실을 운영하며 소소하게 취미반이나 자격증과정의 클래스를 운영한다. 초등학교 방과후나 중학교 동아리 수업까지 겸하시는 분들도 있다. 기관이나 기업특강도 생각보다 다양하고 페이도 나쁘지 않다. 개인작업실의 수입은 강사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학교나 기업특강은 정해진 페이가 있어서 나쁘지 않다. 그래서 개인작업실을 운영하며 외부 특강을 함께 하시는 강사님들이 많다.
사람들과의 호흡이 어렵고 가르치는 것 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는 분들은 스토어를 운영하며 판매만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스티커디자인부터 선물용 액자, 메시지 머그컵 등 다양한 제품들의 수요가 생각보다 많다. 요즘은 기성품보다 특별한 선물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 니즈에 맞게 직접 제작판매하는 캘리그라피 관련 스토어가 인기다. 주변에 판매만 하시는 분들 중에 수입이 상상 이상 이신 분들도 많다. 나의 이야기가 아님이 안타까울 뿐이고, 세상 부러운 분들이다.
또 다른 분야의 작가님들의 이야기다. 매일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드라마 제목부터 영화 포스터 속 타이틀, 광고 속 레터링, 편의점이나 마트에 깔려 있는 수많은 제품들 속 손글씨들의 대부분이 캘리그라피 작가님들의 손에서 탄생된다. 이 또한 작가님의 네임벨류에 따라 제작비의 갭은 있다고 들었다. 최고가를 받아본 적도 없고 열정페이로 일 해본 적도 없어서 정확한 금액은 노코멘트. 다만 1타(어디에나 존재하는) 작가님들의 페이를 듣고 부러움에 헛된 꿈을 꾸었던 입문자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해 본다.
방송분야 이야기에 한가기 덧 붙여보면 드라마나 영화 속 배우들의 글씨 쓰는 장면이나 CF 속 손글씨 영상도 캘리그라퍼들이 손 대역으로 많이 참여한다. 아직 경험은 못 해봤지만 지인 작가님들 중 참여했던 분들의 후일담을 들어본 적이 있다. 일단 연예인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 이미 통장에 찍히는 금액은 뒷전이었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섭섭하지 않은 출연료가 입금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외부행사도 수입원 중 하나다. 시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손글씨 써주는 부스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에서 섭외를 받고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일반 기업에서 의뢰를 받기도 한다. 시에서 하는 행사는 장시간 하는 경우가 많아 체력이 따라줘야 가능하다. 생각보다 배터리가 저품질이라 몇 번 해 보고 대부분 정중히 사양하고 대기업행사나 명품관 이벤트 위주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역시 브랜드는 이름값을 한다. 속물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시간당 페이가 다르고 작업 환경이 다르기에 골라서 갈 수밖에 없다. 명품관에 어울리는 작가의 모습과 실력을 만들기 위해 글씨는 당연하고 겉모습도 신경을 쓴다. 아무나 불러주지 않는 그들만의 퀄리티에 나를 맞춰 놓는 것 또한 노력해야 할 영역이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디지털 캘리그라피의 영역에서 이모티콘, 로고디자인 등 우리의 생활 속 곳곳에서 캘리그라퍼들이 활동하고 있다. 관심은 있지만 어떤 것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수익을 낼지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은 마음에 적어 본 글이다.
서민갑부에 출연한 작가님도 계시다고 들었다. 어느 분야든 끝내주게 잘 나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사라지는 분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능력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 자본주의의 현실은 인정하고 가야 한다. 비겁해 보일지 모르지만 글씨를 쓰기 시작하고 수업을 하게 되면서 다짐했던 초심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대박 나지 않아도 괜찮으니 쪽박 차지 않는
강사로, 작가로 끝까지 살아남자.
약간 비루해 보이는 것 같지만 현실주의자라고 자기 암시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