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식재료, 사랑
곧 이사를 가게 될 전 직장 동료의 집을 찾았다.
출산한 지 한 달 남짓 된 아기 엄마를 위해 남해에서 난 미역을 챙겼다.
식재료를 들고 그 집에 방문하는 일은 낯설지 않았다.
내가 먹고 싶었던 소고기뭇국을 끓여달라며
재료를 사다 안겨준 적도 있다.
요리를 전공한 내가 주로 했지만,
우리는 함께 만들고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문을 열자마자,
작고 고요한 인형이 그녀의 품에 안긴 채 나를 맞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만 불룩하던 임산부만 만났는데,
그 뱃속에서 튀어나온 아기가 이렇게 안겨 있었다.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먹는 동안에도
두 시간마다 이어지는 수유 때문에
그녀는 식사를 온전히 마치지 못했다.
내가 대신 아기를 안고서야
그녀는 조금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잠시 허락된 식사 시간이었고,
나에게는 책임 없는 쾌락의 시간이었다.
잠든 아기의 솜털 같은 속눈썹,
이 작은 손에 갖춰진 작은 손톱,
고르게 색색거리는 숨소리.
작은 인간을 바라보며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경이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임신 중에 말했다.
자기는 그저 별일 없이 하루를 살고 있을 뿐인데,
그 시간 동안 뱃속에서는 발가락이 만들어지고
자라고 있다는 게 놀랍다고.
아무리 사랑이 크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혈관을 설계하고,
자신과 닮은 볼의 곡선을
정확히 재어낼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조금 더 뜨겁고,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와 정반대에 서 있는 것 같던 그녀가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고, 말하고,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다가왔다.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기로 한 선택과
누가 좋다고 말하는 육아용품들을
잔뜩 쌓아두지도 않은 풍경.
유난스럽지 않은 그 결이 오래 눈에 남는다.
의도하지 않은 절제와 덜어냄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같은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풍요함이 곧 사랑도 아니고
부족함이 덜한 사랑도 아닐 텐데
그녀가 보내는 아기와의 시간이
왜 유난히 더 밀착된 사랑처럼 보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