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영어를 할 때 제일 먼저, 늘, 꾸준히,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듣기다. 엄마표 영어가 정말 자신이 없거나 이것저것 시켜도 아이의 영어가 특별히 나아지는 것 같지 않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일단 듣기를 꾸준히 해야 한다. 섣부른 영어로 돈과 시간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뭘 안 하는 게 낫다. 듣기만 10년 이상 꾸준히 하다 보면 영어는 80% 이상 성공이다.
말은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리자. 상황이 닥치면 나도 모르게 나온다. 그것도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서툴다면 자꾸 말을 시키지 말고 영어 듣기를 해야 한다. 세 자매를 영어 능통자로 키운 날것의 경험담이다.
말을 잘하는 아이, 입 꾹 다물고 영어는커녕 한국말도 잘 안 하는 아이, 할 줄 아는데 부끄럽다고 안 하는 아이 다 키워봤다. 결론은 고등학생만 되면 다 똑같다는 거다. 영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자기 앞에 놓이면 유창한 영어가 쏟아져 나온다.
피아노도 동요라도 한 곡 치려면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배워야 한다. 기본음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눈을 감고 도인지 솔인지 듣는 귀가 발달한 절대음감의 소유자들이 피아노를 잘 칠 확률이 높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귀가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나? 언어의 절대음감은 듣기다.
엄마표 영어는 영어를 가르치며 학습시키는 게 아니다. 우리말처럼 자연스럽게 습득시키는 거다. 습득이 되려면 자연스러운 언어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거창할 것 없다. 1호가 20개월 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책과 교재들은 10권 정도였다. 읽고 또 읽고 닳도록 읽었다. 책이 나달나달해져 투명시트지 잔뜩 사다가 정성껏 표지를 감싸며 애지중지했다.
노부영 책을 사서 눈뜨면 읽어주고, 같이 수록된 CD를 밥 먹듯이 틀어댄 게 다였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조금씩 스며들다 보면 나중에 흠뻑 젖는다.
세계적인 언어학자 크라센은 이중언어를 할 때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강의에는 늘 이토미라는 4살짜리 여자아이가 언어 습득하는 과정을 예를 든다.
뉴욕으로 이사 온 이토미를 보고 크라센은 영어를 가르치려 했다. 볼 때마다 크라센은 “안녕”하고 인사하면서 “안녕”이라고 말해봐 했지만, 말없음. 다음에는 abcd를 알려주고 따라 해보라고도 하는데 말 없음. 한 달, 두 달, 매일 봐도 말 없음이었다. 다섯 달째 되니 말을 시키지 않아도 이토미는 말하기 시작했다.
크라센은 이 아이를 보고, 제2외국어 습득도 모국어 습득 과정과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쓰는 단어도 처음에는 한 단어, 두 단어에서 두 단어 이상이 연결된 말로 순차적으로 했다. 이토미가 일 년 후에 미국으로 돌아갈 때는 이웃 아이들의 수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5개월 동안 이토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크라센은 강조했다. “She was listening.” 듣고 있었던 거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말하는 게 언어습득의 시작이 아니다. 엄마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5개월 동안 이토미의 침묵의 기간은 병적인 것도, 성격 때문도 아니었다.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는 인풋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상대방의 메시지를 이해할 때, 내가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언어의 습득이 이루어진다는 거다. 이토미에게 침묵의 시기는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필요한 거였다.
크라센은 언어를 잘하고 싶다고 혼자 거울 보고 말하는 연습을 한다거나, 차 안에서 큰소리로 외우면서, 반복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거기에는 상대방의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유아 때 엄마표 영어의 할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영상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1호에게 그림책 읽어주고 CD 틀어주고, Wee sing for baby 노래 테이프 틀어주고, AFKN 채널에서 하는 어린이 프로그램 20~30분 같이 시청하는 정도다. 5세까지는 이런 식으로 흘려듣기를 했다. 물론 평면적이고 기계적으로 책을 읽어주거나 반복하지 않고 늘 재미를 추구했다.
듣는 시기에는 듣기만 하자. 옹알이할 때는 옹알이 잘 받아주고 상호작용하는 게 최고이지 이 단계를 건너뛰어 글짓기를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가지만 파고들기를 권한다. 파닉스나 문법도 저절로 해결된다.
듣기는 영어를 잘하기 위한 프리패스다. 우리가 흔히 알아는 듣겠는데 말을 못 한다는 건 더 들어야 한다는 소리다. 저비용 고효율의 방법, 듣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