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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선 Mar 25. 2022

나의 작고 어린 친구 안녕

#24

나에게 우정은 10대에도 충분히 고민할 만한 주제였지만, 대학 입학 후 같은 과 선배와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진정한 친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는 질문에는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고작 스무 살이었고, 남은 긴 인생을 생각하며 무엇인가를 정의 내리기엔 경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우정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그 무엇이었다.


흡사 사랑에 대한 정의와도 비슷한.


사람의 가치관, 생각은 각자의 몫이고 고유성과 자유성을 갖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오글거리고 무겁게 느껴질 만큼 진지한 성향을 갖고 있었다.


“ 선배 저는 죽기 직전에나 이 사람이 나에게 진정한 친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에게 진정한 우정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변함없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관계니까요”


 무언가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 내리지 않는 답답한 성향을 갖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 대답이야말로 가장 적확한 답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우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은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친구라는 개념을 마음속으로 간직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짝꿍 J 덕분이었다.


소풍 가던 날, 버스 안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나의 등을 오랜 시간 마사지해 준 친구.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런 애정 어린 손길은 부모님에게도 받은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아마 더 감동이었으리라.


물론 부모님은 그분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시기 위해 늘 노력하셨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부모님에게 감사함을 갖고 있다.


아무튼 그 친구로 인해 우정을 맺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영원한 우정을 간직하자고 함께 맹세하였다.


그러나 그런 약속 따윈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어느 날 J는 절교를 선언하고 내 곁을 영원히 떠나버렸다.


인생에서 그 이전보다 관계에 대해 좀 더 진지하거나 실제적인 생각을 했던 때는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두 번 다시 사람을 믿지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내 앞에서 유유히 사라져 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한없는 허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스무 살의 나는 변치 않는 관계야말로 진정한 우정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물에 또 스물다섯을 더한 지금은 영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한 시절 소중했던 친구는 그 인연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가까우면 가까운만큼의, 멀리 있다면 멀리 있는 거리에서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 그땐 몰랐을까?

우리의 관계를 망쳐버린 건 어쩌면 나였을까.


이런 결론은 반증에 또 반증의 시간을 겪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작고 여리고 어리고 소중했던 내 친구야!

그때 넌 나에게 베스트 프렌드였어. 그때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한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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