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전화를 마지막으로 K는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나 역시 침묵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였기에 연락을 하지 않았고, 한동안 나는 타인의 삶과 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결혼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당연히 헛된 노력이었다.
이를테면 감정이 없음에도 지속적으로 만나기.
결혼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개를 받고 만나고의 반복이었지만 어떤 순간에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오랜 친구 Y는 무심하게 만나고 있는 나를 보며 답답해하거나 때론 이제 그를(또는 그들을) 그만 만나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행동은 상대방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무엇인가를 찾거나 혹은 확인하기 위해 했던 행동이었을 것이다.
2년을 조금 넘게 만난 W와 헤어지기 전까지도 나는 결혼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당연히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머릿속으로 결정이 날턱이 있나.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생생한 꿈을 꾸었고 나는 더 이상 인위적인 노력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꿈을 꿨어.
미래의 셋째 딸과 내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었어.
나는 혼자
그의 오랜 시골집에 내려가 집안을 홀로 돌아다녔고
방바닥,
문틀,
오랜 창문을 보며 리모델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맨질맨질한 방바닥의 느낌이 너무나 선명해서
꿈인지도 모르고 다시 꿈을 꾸었네.
작고 낡은 창문 밖으로
나의 셋째 딸로 보이는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그를 보았어.
세월이 흐른 흔적이 보이는 얼굴에는
젊은 때와는 다른 분위기의 여유와 차분함이 느껴져서
마치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지.
그렇게 미래를 보고 돌아가는 길 위에서도
나는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고.
내 카페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걷고,
걸어가며 계속 생각하고 있었고
현재의 그는 내가 자기 시골집에 간 줄도 모르고
오지 말라는 말도 듣지 않고,
대구의 내 카페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이대로 나는 대구 카페로 올라가고,
그는 여수로 내려오는 것일까?
그때 문득
이대로 올라가다가 서로 엇갈리지 않고 만난다면
이제 생각을 멈추고 그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눈이 살짝 내리는 거리를 홀로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화 진동 소리가 나를 깨우네.
정말이지. 현실 속 전화 진동소리에 잠을 깰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어나자마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보통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에 휩싸였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또 다른 생생한 꿈속에서의 꿈.
그 안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현실의 반영이었을 테지.
꿈속에서 나는 미래의 셋째 딸을 보았고 보다 성숙해진 W를 보았다.
안정되고 여유로운 미래에 도착했음에도 결정하지 못한 것은 대상 없는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적어도 그 그리움의 대상이 W는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와의 만남을 기대하며 걸어가고 있었으나 꿈속에서조차 결혼은 결정짓지 못하였고 진동 벨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사는 것일지도.
그래.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
세상은 어쩌면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사람,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리고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그들은 놓기로 한다.
오래전 K는 나에게 알 수 없는 기호가 넘쳐나는 편지와 말들을 던지고 사라졌으며 나는 여전히 답장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친구들은 그녀가 나를 많이 사랑했던 거 같다는 얘기들을 하곤 했다. 그런 경험은 흔치 않다고.
그래서 나는 이런 청춘의 기억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한 비슷한 일들이 내겐 당연하기라도 한 듯 여러 번 발생했고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타인에게 어떠한 판단의 말이나 왜곡된 생각을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날들. 그러나 언제나 제자리였던 것만 같았던 어리고 어리석었던 청춘의 기억을 이렇게 글로 남겨보려 한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그 무엇도 아닌 그냥 내가 되어보려 한다.
이제 남과 비슷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기로 한다.
남의 판단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그게 무엇이든
어떠한 형태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