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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선 Sep 17. 2015

청춘 #3​

 - 그녀의 편지

To. 진형    


너가 누군가 잠시 생각했다지.    

넌 누군가하고    

진형아 나 도망갈까?    

어디로부터? ...    

어디로?    

어느 곳이든.

그럴까?

그러면 안될까?    

그래.

오늘은 도망갈 바늘구멍도 보이지 않아 무서웠던 두려웠던 하루였다.    

그런 길은 없다는 걸 아는데...

그거 아니? 그동안 니가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는지....    

그런데 오늘 든 생각은 그렇게 따뜻하게 대하지 말라는 거다.   

모든걸 다 받아줄것처럼 그러지 말아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두렵다.    

너에게 익숙해질까봐    

너에게 기댈까봐    

너에게 사로잡힐까봐 조금 두렵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겠지.    

너와 같은 사무실 같은 공간에 있을 때에도 나는 너가 그립다.   

보고싶다.   

그럴때가 있다.    


진형아   

그렇게 다 이해해줄것처럼    

그렇게 다 받아줄것처럼    

그렇게 따스하게 굴지마라    

그런 사람 되어주는 거 싫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못해 헤매이던 날들   

오늘같이 이런날 왠지 너에게 마음이 벌써 가있는거...   

그래 어쩌면 이미 ...너에게 익숙해졌나보다. 너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렇게 내옆에서 나무가 되어 쉬어갈곳 만들어주지마라.    


그렇게 나를 만든거 너 아닌데 그럼에도 그 모든걸 가능케한 너가 잘못한 것이다.   

갑자기 이런 내 자신이 스스로 당황스럽다는거 참 별로이다.   

넌 알고 있을거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을거다.    


너를 지금보다 더 좋아하기는    

너를 지금보다 더 보고 싶어 하는것도    

그립다 느끼는것도    

익숙해지는것도    

중독되는것처럼  너에게 다가가는것도    

집중하는것도    

그렇게 더이상 내게 너를 담는 것 싫다.    

그러지 않고 싶다.    

그렇게 하게 말아라.    

그러지 않도록 ....너가 도와줘야 할 것 같다.    

후회할까? 너에게 이런  글 쓰는거    

그래 이미 쓰면서 글을 끝맺기도 전에 이미 아프다.    

하지만 너는 알아줄거라 믿는다.   

슬플때,외로울때,힘들때, 그렇다고 느낄때

따스한 손은,목소리는, 마음은...

더 빨리 사람을 죽일뿐이다.    

그럴뿐이다.    

너무 소중할거 같아    

너무 사랑할거 같아    

뒤로 물러나게    

두렵게 할수도 있다는거    

너는 알아줄 수 있을거다.     

지금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좋았을까?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었겠지...    


진형아    

사랑하는 진형아...    

그래. 너를 사랑한다.   

그것뿐이다.    

누군가가 좋다는거    

위로가 된다는거    

따스하다는거    

그건 별로다. 참 안좋다.    


추울때 생각나는    

힘들때 보고싶은    

따스하고 위로가 되는

참으로 사랑스러운 눈빛을 갖고 있는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너.    

내겐 참 별로이다.    


이렇게까지는 기대하지도 그리고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이런 존재가 되어 나의 삶에 있다는 거    

그것 차체가 사절이다. 이해하니?    


그것이 여자든 남자든    

친구든    

그 무엇이든    

누구가 그런 사람 되어주는것    

그렇게 나를 길들이는것    

그러고 싶지 않다.    


시간을 세월을 공간을 뛰어넘어    

너무나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것.    

영향을 준다는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 비현실성과 그 위험성.   


너가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너가 나쁘다.     

지금만으로도 넌 내게 특별하니    

더 이상의 따스함은 주지 말아라.    

너를 더 좋아하게 만들거나

너에게 더 익숙하게 만들면    

너를 많이 좋아하는 대신 너를 미워할거다.    

그리고 싫어할거다.    


더이상 따뜻한 사람되어주지 말아라.    

그렇게 모든걸 다 받아주지 말아라.    


보고 싶은 사람도    

위로가 되는 사람도    

따스한 사람도

그렇게까지 좋은 친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 갖고 싶지 않다.    


얼음을 품는것도 싫지만    

해를 품는것도 싫다.    

미움도 싫지만 사랑도 싫은것처럼...    


넌 너무 나에게 따뜻하다.    

너무 많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있다.    

지나치게 말이다. 조금...아주 조금 나에게 차가운 냉기를 주는게 좋을 듯 싶다.    


유감스럽게도...    

언제가는 지금 이런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겠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금 이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 너가 허락할꺼라 믿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맘은 여전히 편하지가 않다.  


넌 슬프지 않을꺼라 믿는다.    


손을 잡고 있는것보다 그손을 놓아도 자유로울수있는거

그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성장하는거겠지.   

너와나 우리 모두 더 많이 커야겠지.      


욕심으로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숨을 쉴 공간조차 없어짐을 보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오늘 이 말들... 아마 다시는 언급하지 않을꺼야.   


알고있지?    

내가 널 참 많이 사랑한다는 것.   

너가 더 깊어지는 모습 보고 싶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모든게 다시 평평해 질까하고...     


                                                                        From. K




언니의 편지는 알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한 느낌이었고, 뇌부하라도 걸린 듯 나는 멍하니 전철속에서 앉아있었다. 어쨋거나 다음달이면 언니는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할 것이고 내가 선배를 만나러 미국으로 갈 일도 주소나 전화번호를 먼저  물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지만 다시는 만나지도 서로의 안부 않은채 살아 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의 편지를 그 전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성장의 시기. 아주 느린 속도로..성장이 멈추버린 늙어버린 아이처럼


너무도 느리게 아주 천천히 그녀의 글들이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때서야 아쉽고 또 아쉬웠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랬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쏟아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새벽 3시에 잘 지내라는 마지막 전화를 남기고 내 앞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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