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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선 Sep 18. 2015

청춘 #4 ​

- 비어버린 맹세

인생에서 그 이전보다 사람에 대해 좀 더 진지하거나 실제적인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던 때가 사람들이 한 명씩 떠나갈  때였을것이다.


나에겐 직접적으로 절교를 선언했던 친구들이 여럿 있었는데 한때는 참 많이 사랑했던 친구들과의 마지막의 순간들은 시간이 많이 지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다른 친구들이 애인과의 이별에 힘들어할 때, 나는 동성친구들과의 이별로 힘겨워하곤 했었다.

영원을 맹세하던 친구가 떠나 갈 땐 몇 번이고 붙잡았고, 떠나가지 말라고 이유를 말해달라고 1년 이상을 물었지만, 친구는 끝까지 이유 따윈 말해주지 않았다. 두 번 다시는 사람을 믿지도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내 앞에서 유유히 사라져갔다.  

어떤 이별도 유쾌한 기억이 될 수 없다. 헤어짐의  후유증은 참 오래 지속되었다. 매일 그 생각안에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젠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지친 마음에게 물어보면, 마음은 아직 조금 더 기다려줘 라고 대답하곤 언제나 같은 공간(그 영원을 맹세했던 공원 언저리)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내버려두자.'

그 감정의 끈을 실컷 붙잡고 있으라며 마음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는  그 누군가와도  영원을 맹세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더군다나 사람과의 관계가 맹세 따위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잖아. 지켜진다 해도, 변하는 마음을 어떻게 맹세 따위로 구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친구에게서 해방된 것은 혹은 그 언저리에서 떠다니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게 된 것은 서른을 갓 넘겼을 때였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가느다란 인연의 실끈이‘탕’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이  가늠된다는 것이 참 기묘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까지 감정적 소모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그땐 그랬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세상의 순리에 한없이 진지하고 또 진지했으며 그 관계라는 것이 생의 전부라도 되는 것처럼 감정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었다.

관계의 유지는 힘들었지만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도 있을까?


졸업 후 사회 생활하면서 딱 한번 그 친구를 만났었고, 떠나간 이유를 다시 한번 물었으나 친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가볍게 대답했을 뿐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번더 안부를 주고받았으나 결국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완전히 끝이나 버렸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난다는 걸 그 순간 알게 되었지만, 한번 소중했던 인연은 아주 오랫동안 소중할 것이라는 것 또한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  깨달음이란 반증에 또 반증의 시간을 겪어야만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란 건 여전히 어렵고 서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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