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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선 Sep 29. 2015

청춘 # 5

 - 꿈속의 꿈

 집으로 돌아와 나른한 기운에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만난 k의 모습은  어쩐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긴 생머리에 여리여리 하얀 원피스가 어울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흰머리가 섞여 있는 쇼커트에 60세 가까이 되보이는  나이  그리고  땀냄새가 날 것 같은  빛바랜 작업복을 입고  장화를 신은  그녀는  어느 농가 주택 뒤뜰에서 일을 마치고 집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는 30년을 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것일까? 주위에 아는 사람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부모도 형제도 다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고 밖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바람소리는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것 같이 불안감을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실 마루 조명 좀 갈아줘요"라고 나는 말을 했고  그녀는 어디선가 가져온 사다리로 자연스럽게 전구를 바꿔 낀 후  내려오면서  몸에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모든 것이 순번대로 짜여진 각본처럼 일어났고 이미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은  기운에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 가슴 아픈 꿈.  확실치 않지만 나는 흐느끼면서 그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 몸  어느 부분에선가 신호를 보내고 나는 그것을 끝까지 받아 적어 뜻을 해독해야만 할 것 같아 깰 수 없는 꿈.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고 비디오를 되감듯 그날의 일을 수도 없이 되돌리며 후회했다. 그날이 아닌 다른 어떤 날로  그 이전으로  아니 우리가 만나기 훨씬 이전으로 수도 없이  시간을 되돌리며 그렇게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이  혼자 간 그 길을 아파하고 또 아파했다. 그렇게 아파했던 시간 속에서  내가 만났던 그 사람의 유일한 혈육은 그녀의 사촌동생 부부였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인 그들은  마루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그녀의 명의로 되어 있던 집이 자기들에게 상속되어 집을 팔 것이라고 얘기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의 이야기는 둘만의 기억 속의 집과 함께 나에게서 아무런 이별의 예고도 없이 이렇게 찾아왔다. 아!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시간들은 이제 공기 없는 상자 속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가볍고 또 가볍게 헛되고 또 헛되게 그토록 빛나고 충만했던 추억은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이  텅 비어버린 마음으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어떤 기억으로

어떤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리고, 또 다른 꿈.



 나는 어쩐지 나와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과 손을 잡고 철도길을 한 없이 걷고 있었다. 끝도 없이 무겁고 어두운 길 위에서  우리는 울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이 길을 걷고 싶지 않다고 되돌아가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소리 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그 사람의 손을 놓을 수도 그 길을 벗어나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왜 이렇게 슬픈 결론을 내야만 하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꽉 다문 그녀의  입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심장이 가슴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은 두근거림과  공포 속에서 잠에서 깼다.  


너무나 강렬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잊을 수 없는 꿈.  좀 더 디테일한 기억은 사라졌지만 여기까지가 그날의 생생한 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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