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면 잊어버리는 도시

#2

by 온정선

이 이야기가 사라지기 전에 어딘가에 남겨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골목 끝에서 한 노인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있었다.


그가 말했다.


“민초희 이야기를 들으러 왔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여자는...”


그 순간, 멀리서 다시 보일러가 끓는 것 같은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웅- 우웅- 나는 잠깐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노인을 보려 했을 때, 그의 얼굴이 어딘가 낯설게 변해 있었다. 마치 방 안에서 보았던 그 사람처럼. 노인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친구와 함께 다시 그 집 앞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풍파가 느껴지는 대문 옆에는 낡은 나무 기둥이 있었고, 그 앞에 이상한 기계가 붙어 있었다. 회사 출입구에서 보던 카드 인식기 같은 것.


그리고 그 위에는 작은 철제 전화기가 달려 있었다. 번호판도 없고, 버튼도 몇 개 없었다. 누구에게 연결되는 전화인지 알 수 없었다.


잠깐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거리에는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멀리에는 유리 외벽의 반짝이는 높은 건물들이 서 있었다.


“여긴 도대체 어느 시대야.”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대문을 보았을 때 세 남자가 문밖으로 나왔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여러 시간들이 한 곳에 겹쳐 있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의 옷차림이 그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 이 건 꿈속이 분명해!"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세 남자 중 한 명이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그걸 알아챈 거야? "


따뜻한 베이지색 중절모를 쓴 다른 남자가 대문을 돌아봤다.


"문제는..."


남자가 측은한 표정으로 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깨어나면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지."


그가 대문옆 기계에 주머니에서 꺼낸 카드를 대는 순간, 작은 철제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띠링-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세 남자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중절모를 쓴 남자가 턱으로 전화기를 가리키며 은수에게 말했다.


" 받아. "


나는 잠깐 숨을 고르며 물었다.


" 누구예요? "


" 우린 몰라. 카드를 찍었다고 해서 항상 전화벨이 울리는 건 아니야."


남자는 잠깐 생각하는 것처럼 하더니 덧붙였다.


"특히... 처음 온 사람 앞에서는."


전화벨이 다시 울리자,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신중하게 말했다.


“받아봐.”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잠깐 전화선 너머에서 바닷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여보세요...?"


그때 아주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그 집에서 나왔구나.”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한다.


“누구세요?”


잠깐의 침묵 후 다시 그 목소리가 말한다.


“네가 내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잖아.”


"네? 누구세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문을 돌아봤다.


"기억해!"


"뭘 기억해요?"


잠깐의 침묵 후 그 목소리가 말했다.


" 잠에서 깨어나면 다 잊어버리니까."


전화선 너머에서 다시 바닷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천천히 전화기를 귀에서 떼었다. 그런데도 웅- 그 소리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었다.

잠깐 귀를 기울이자 아주 멀리 어딘가에서 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전화가 뚝 끊어지고, 천천히 전화기를 내려놓자 중절모 남자가 조용히 묻는다.


“뭐라고 하던가.”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한다.


“기억하래요.”


남자가 잠깐 웃는다.


“아... 그 여자네.”


은수 심장이 또 한 번 내려앉는다.


“민초희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 집주인. 이곳의 설계자이자 꿈속 여행자.”


그리고 덧붙인다.


“전화받은 사람은 보통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


나는 잠깐 숨을 고르고 친구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너도 들었지?”


대답이 없었다. 은수는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옆에 서 있던 친구 진형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 회색 양복을 입은 사람들.


그 사이 어디에도 진형은 없었다.


은수는 잠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잠에서 깨어나면 잊어버리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