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by 온교

잠을 포기하고 시집을 들었다. 최승자. 우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그저 울음 바닥 속에서 손을 휘저으며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슬프다’ 밖에 없을 때. 벼려진 시어로 나보다 더, 더할 수 없이 처참하게 울어준 시인. 나 대신 울어주는 사람.





시 짓는 이를 통해 울 수 있음에 감사한 새벽이다. 감동도 일종의 능력이라 함양하지 않으면 점점 퇴화되기 마련이다. 부지런히 촉수를 매만지고 가다듬어야 한다. 사는데 불편해도 예민함을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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