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 탈퇴를 위해 고등학생 때 잠깐 활동했던 대학 입시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오르비나 수만휘처럼 큰 곳도 아니었고 내가 활동했을 무렵이 마지막 전성기였던 터라 폐쇄만 되어있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웹 주소도 가물가물하여 10분 정도 구글링을 한 끝에 들어간 커뮤니티는 여전히 운영 중이었다. 오 아직 안 망하고 있었네, 신기한 마음에 나 때랑 뭐가 달라졌는지 게시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검색창에 내 아이디를 입력해보았다. 무슨 댓글을 남겼는지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악플이라도 나오면 당장 삭제 후 탈퇴할 계획이었다.
엔터를 누르고 1초 후 모니터에 뜬 건 뜻밖에도 내 글이었다. 내가 쓴 게시글. 10년 전에 썼던 게 아직도 남아 있다니. 목을 거북이처럼 늘려 모니터 앞에 바싹 댔다. 이토록 시간이 오래 쌓인 내 글을 읽는 건 처음이었다. 여덟 살부터 써온 일기장이 있었지만 고등학교 입학 직전, 이사를 하는 도중 잃어버렸다. 따로 챙기지 못하고 버릴 책들 옆에 놔두는 바람에 함께 버려졌다. 여기 있던 공책들 다 어디 갔냐고 물었을 땐 이미 외할머니의 지갑 속 짤랑거리는 동전으로 바뀌고 난 뒤였다.
책, 폐종이와 함께 일기장을 팔아버린 외할머니를 원망했지만 이내 소중한 일기장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시간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을 느꼈지만 누가 누굴 탓하랴. 어찌 되었든 본인의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의 부주의였다. 그 후로 일기를 매일 쓰면 뭐하나 잃어버리면 그만인데 라는 허무주의에 빠져 정작 할 말 많고 쓸 말 많았던 고등학교 3년 동안에는 일기를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싸이월드에 쓰는 짤막한 감성 일기도 유행이었지만 허무주의를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시 일기장을 펼친 건 스무 살이 되고 나서였다.
어쩌면 내가 남긴 가장 오래된 기록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마냥 신기한 마음과 좀처럼 찾기 어려운 고등학교 시절의 기록을 찾았다는 애틋함으로 몇 번을 내리읽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고등학생 온교는 뭐랄까, 쿨해 보이고 싶어 안달 난 아이 같았다. 지금 힘든 상황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아, 아임 오케이! 인생 뭐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아임 파인! 아니 이 무슨 지나친 쿨병인가.
교복을 입은 내가 감쪽같다며, 흡족한 표정으로 키보드 두드리는 걸 떠올리니 귀여워서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무엇이 이 아이를 미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듯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인 척 하게 만들었을까. 쿨해 보이려 한껏 꾸민 문장들이야말로 얼마나 쿨하지 못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반증인데. 십 대 후반의 나를 좀 더 이해해보고 싶었던 이십 대 후반의 나는 다시 한번 골몰하게 글을 들여다봤다. 음. 표면적인 텍스트만 그 자리에 있을 뿐 행간 읽어내기엔 실패했다. 둘은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노트북을 닫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는 동안 삼십 대 후반의 내가 하는 잔소리가 쟁쟁하게 들렸다. 야 이십 대 후반. 너는 뭐 이런 것까지 공개적으로 써놨어. 관종이냐고. 이게 다 네 흑역사야 임마. 10년 뒤에 나는 오늘 내가 그랬듯 피식피식 웃다가 안쓰러워해 주려나? 수다 떨고 싶은 마음에 글로 풀었구나 하고. 아님 얘가 왜 이런 말을 썼지? 당최 모르겠네 하고 이해 못하려나.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