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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면

소설 안 쓰는 변명

채만식 수필 중

by onl

K군. 소설이라는 것이 시대나 사회 즉 현실을 떠나 순전히 머리속에서 장만한 이야기를 펜으로 그려놓은 것이라면야 퍽 쉽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것이야 어디 참된 문학이 될 수 있소? 오늘날 리얼리즘의 소리가 높은 것은 그 때문이라오. 그런데 그 현실이란 것이 나에게는 너무도 벅차오. 나 -한개의 소시민- 의 체험하는 현실은 도무지 보잘것이 없소. 박봉의 신문기자 생활이 아니면 수입 전무의 룸펜. 그래서 나의 현실이라는 것은 나의 스케일이 좁고 깊이가 얕은 ‘생활’ 에서 오는 아주 빈약한 것에 지나지 못하오. 이 사회 이 시대에 있어서의 현실은 한개 소시민의 우울한 생활에 비하면 거기에는 실로 눈에서 불이 번쩍 나는 다이나믹한 열(熱)과 역(力)의 작용이 있는 커다란 역사적 현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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