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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면

반려카메라

190513

by onl

갖고 있는 필름카메라들이 반려동물 같다. 나이 든 반려동물들, 그들을 보거나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 안다. 고향 집에서 몇 마리의 반려견을 보낸 적이 있고, 늙어가던 그들이 어떻게 힘을 잃어갔는지 기억한다. 내 카메라들을 보고 있자면 옛날에 느낀 그 감정과 비슷한 무엇이 올라온다.


4년 정도 필름 사진을 찍어왔는데, 그간 몇 대의 카메라는 작동을 멈추었고 어떤 카메라는 튼튼한 반면, 또 다른 카메라는 수리점 신세를 면치 못한다. 오늘은 늘 말썽인 카메라 하나를 수리점에 가져가는 날이었다. 나이 든 반려동물을 병원에 데려가듯이 불편한 기분으로 수리점을 향했는데, 가는 길에는 심지어 아예 고치지 말아버릴까 고민하기도 했다. 안락사 같은 걸 떠올렸나. 돈도 많이 들뿐더러 카메라가 살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건지 내가 살리려고 애쓰는 건지, 무엇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어서였다.


다행인지 아직은 카메라가 살았다. 수리점 아저씨는 우선 응급처치를 했으니 일단 써보고 또 멈추면 다시 오라고 했다. 오늘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고친 지 한 달이 넘지 않은 카메라와 나를 기억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안도하며 불안해했다. 다음에는 적어도 내가 고치러 가진 않을 것 같다. 속상해서 못 가겠다.


한 달 전쯤엔 어떤 작가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에 관한 글을 읽었다. 글을 읽으며 옛날에 나와 함께 컸던 강아지가 생각나서 울었다. 나도 그 친구를 그리며 이런 글을 쓰리라 다짐했다. 아래는 그 작가가 쓴 글의 한 부분인데 필름카메라 이야기를 하며 이 글을 붙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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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불행한 존재들에 대해 연민 때문이라지만 사실은 그 존재들의 비참한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 또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당사자보다도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 그르니에, 고양이 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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