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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Sep 09. 2017

양복

170907

보통 손님이 가게 문을 열 때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그 뒤로는 말을 걸지 않는다. 먼저 말을 거는 점원에 거부감을 느끼는 부담스러운 내가 정한 나만의 규칙이다. 인사를 하고도 계속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손님이 아니다. 그 사람은 다른 목적이 있다. 오늘 회색 체크무늬 양복을 말끔히 입은 남자도 그 부류의 사람이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인상 좋은 남자가 웃으면서 들어왔다. 난 퍽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무표정을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자신을 ㅎ 카드 영업 사원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서글서글한 얼굴로 연회비가 없는 카드 상품이 있는데 만들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마침 어제 ㅎ 카드를 반으로 두 동강 냈던 나는 필요할 수가 없었기에 거절했다. 거절을 전했음에도 미소 짓는 그는 나중에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건넸다. 그러곤 뒷굽이 닳지 않은 반들거리는 구두로 가게 바닥을 일정하게 두드리며 나갔다. 그의 양복은 딱 요즘 젊은 사람이 입는 스타일이었다. ‘나도 일반 회사에 다니면 저런 양복을 입었겠지’ 생각했다.


내게 양복은 지인의 경조사나 각종 행사를 갈 때만 입지만, 난 그런 양복이 꽤 많다. 양복을 형태나 색깔 별로 모은다. 내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찾는 걸 즐긴다. 보통 남자들이 게임이나 운동을 하면서 스릴을 즐긴다면 나는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스릴을 즐긴다. 1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마주했던 그의 옷 태가 예뻐서 자주 가는 옷 사이트에 들어갔다. 딱 마음에 드는 양복이 있길래 관심상품에 담아 두었다. 월급날까지 품절되지 않으면 주저 없이 사겠지. 그가 만들어주겠다는 연회비 없는 카드로 바로 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어제 버린 카드처럼 그가 준 명함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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