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약봉투를 한 아름 들고 병원을 나섰다. 비닐봉지 속 약봉투가 바스락 거릴 때마다 심장이 같이 구겨지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 있는 상우의 눈을 끝내 보지 못했다. 놓치면 안 될 것처럼 상우의 손을 꼭 잡은 채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햇빛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전부 회색이었다.
상우를 집에 내려주고 나니 마침 큰아이 하교 시간이었다. 차를 몰아 학교로 향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성호는 어느새 제법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차 안에는 낮게 울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만 공간을 채웠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재잘거렸을 텐데, 그날의 공기는 달랐다. 무겁게 가라앉은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성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그 한마디에, 꾹 눌러 담아두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입을 열기만 해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버티고 있었는데, 성호의 질문은 마치 큐사인처럼 나를 움직였다.
나는 왜 그렇게 많은 마음을 큰아이에게 쏟아냈을까.
아마도
그 아이만은,
그 아이만큼은
내 마음을 다 알아줄 거라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성호는 늘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깊은 공감이라 착각했다. 이 아이는 언제나 내 부탁을 들어주는 아이라고, 혼자서 그렇게 믿어버렸다.
제주도의 절벽 위에서 파도를 내려다보며, 아직 어리던 성호에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적이 있다.
“성호야, 나중에 엄마가 죽으면 여기에다 뿌려 줘.”
그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성호는 자라서 내게 다시 물었다. 정말로, 제주의 그 바다에 뿌려지기를 원하는 거냐고.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공부를 잘해야 선택권이 넓어진다고.
그래야 잘 살 수 있다고.
그렇게 굳게 믿으며 살아온 나에게, 작은아이의 병은 마치 상우가 이 모진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약한 존재라는 의미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그날,
차 안에서
나는 또 한 번
성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부탁을 했다.
나중에,
엄마가 없을 때
상우가 힘들어지면,
네가
곁에 있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