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by 버티기





“웅—웅—”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제 막 교직에 들어선, 젊고 똑똑한 상우의 6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무리 훈육을 해도 상우는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ADHD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어린아이를 굳이 정신과에 데리고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불안감에 휩싸여 ADHD에 대해 폭풍처럼 검색했다.



유전적 요인이 있다.

성인이 되면 절반가량은 자연 호전된다.

그러나 학습장애를 동반하거나

품행장애, 다른 정신과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니

조기 치료가 좋다.



대략 그런 내용들이었다.


노란 티셔츠에 보라색 안경을 쓴

그날의 상우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장애인이야?

왜 나를 이런 곳에 데리고 와?”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뇌파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그날 이후 상우에게 약을 먹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입맛이 없던 아이는

약을 먹으며 점점 더 야위어 갔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큰아이에게 했던 것처럼 상우를 공부시켜 반에서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다른 아이였다면 신나 했을 일이었겠지만, 상우는 달랐다.


“이건 엄마 성적이지, 내 성적이 아니야!”


약을 먹는 동안 상우는 손톱 밑 생살이 벌겋게 드러날 만큼 제 손톱을 심하게 물어뜯었고, 배가 등에 붙은 것처럼 말라갔다.


도대체 어떤 약이기에 이럴까.


그 약을 직접 먹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한 알, 두 알.

내 체중에 맞는 적정 용량에 이를 때까지 먹었다.


모든 음식은 모래알 같았고,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메스꺼움에 숟가락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치료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생기를 얼마나 잔인하게 도려내고 있었던 걸까.

후회는 뜨거운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상우에게 약을 먹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떤 성적을 받아오든 신경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상우의 초등학교 시절은 큰아이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과 겹쳐 있었다. 그 6년 동안 나는 오로지 큰아이를 공부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그것이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이제 같은 경로로 상우를

궤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우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엄마라는 존재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평생

나의 엄마를 무척 차가운 사람이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꼭 포근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는 엄마라기보다

‘학습 코치’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대학생이 되어버린 큰아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작은 아들에게

빚을 갚겠다고.


그때 아이의 나이는 열두 살.

나의 사죄는 앞으로 이십사 년을 이어가리라 마음먹었다.


기어코,

따뜻한 엄마가

되겠다고.









이 글은 제 가족의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것입니다. 모든 아이와 상황은 다르므로, 진단과 치료, 투약 여부에 대한 결정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