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성호는 중학생이 되었다. 몸이 자라는 속도만큼 학습 능력도 빠르게 늘었다. 어릴 적의 귀여운 얼굴은 사춘기를 지나며 제법 잘생겨졌고, 변성기를 거치며 목소리도 낮아졌다.
어릴 때 거의 나 혼자 애써 키운 아이라 그런지 나는 이 아이를 각별하게 아꼈다. 폭포에서 물이 아래로 떨어지듯 성호를 사랑하는 일은 나에게 힘이 들지 않았다.
성호의 성취는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우리 가족 모두의 환호가 되었다. 성호는 하루 동안의 일들을 밥을 먹으며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부부와 두 아들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대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성호였다.
성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주에서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것으로 이름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학교에는 ‘학사반’이 있었다.
전교 40등 안에 들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스스로 관리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입시 성과는 뛰어났지만 한 학기라도 40등 밖으로 밀려나면 곧바로 퇴출되는 구조였다.
성호가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낯선 곳에서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잠자기 편한 침구와 짐을 차에 가득 싣고 기숙사로 데려다주었다. 그곳에 입사하는 일은 마치 이미 서울대에 들여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숙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엄마로서의 뒷바라지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급식, 청소, 간식, 라이딩, 정보 수집까지. 그들만의 리그였다.
한 학기쯤 지났을까. 3학년 자모회장이 살며시 내게 말을 건넸다.
“성호 요즘 어때요?
우리 아들이 그러는데,
너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린다던데요….”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성호는 기숙사에 들고 들어갔던 침구를 두 손 가득 들고 퇴출되어 나왔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서 있던 우리 모자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다. 성호는 타고난 천재도, 공부가 즐거운 아이도 아니었다.
다만 엄마의 답이 정해진 질문을 거절할 줄 몰랐고,
저녁 식탁에서 부모의 기쁨을 자신도 모르게 짐으로 지고 있었을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도 알고 있었다.
성호의 공부는 밀어주는 힘이 없으면 스스로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집에 돌아와 나는 호랑이 같은 눈으로 아이를 다잡았다.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사반에 들어갈 성적을 만들라고.
그리고
'학사반'에서 들어오라고 하면,
그때는 거부하라고.
그렇게
되갚으라고.
성호는
또다시
엄마의 말을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