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성호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내가 살고 있는 청주는 고등학교 수가 부족해,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시 외곽인 읍·면 단위의 고등학교로 진학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공부는 때가 되면 스스로 하는 거지,
엄마가 시킨다고 되겠나?’
라는 다소 오만한 생각으로 아이의 성적에 무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닥쳐온 현실 앞에서 더는 여유로울 수 없었다.
성호에게 이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고, 엄마와 함께 공부를 시작해 보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순순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내 기억으로 나는 단 한 번도 성호에게 무언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늘 아이의 의사를 먼저 물었고, 아이는 그에 따랐을 뿐이었다.
공부를 시작하자 6학년 무렵 반에서 상위권이 되었고, 중학교에 가서는 전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소위 '공부 잘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팀을 짜서 과외를 하자는 제안들이었다.
새로운 학원이나 과외를 시작할 때마다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성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를 물었다. 나는 자녀의 결정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엄마라고 스스로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질문은
이미 정해진 답을 향해
아이를 몰고 가고 있었다.
선택지는 있었지만 그 폭은 아주 좁았다.
성호는 한 번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방대한 학습량을 묵묵히 감당해 낼 뿐이었다.
사교육에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아이가 하겠다고 한 이상 등골이 휘더라도 뒷바라지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본인의 의지’로
정교하게 포장된 부모라는 권력은
아이의 길 위에 조용히 레일을 깔았다.
그리고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은 착한 아들 성호는 내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매끄럽게 달려 나갔다.
성호의 성적표는 내 어깨에 달린 훈장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