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
서귀포의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예쁘던 날, 성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발 동생이 생기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둘째 아이가 돌이 될 무렵
우리 가족은 청주에 정착했다.
상우는 성호와 여러모로 달랐다.
엄마밖에 모르고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성호와 달리, 상우는 너무도 쉽게 내 시야 밖으로 사라지곤 했다.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잘 다쳤다.
유년기 동안은 야경증에 시달렸다. 한밤중, 공포에 질려 식은땀을 흘리며 울부짖는 아이를 온몸으로 감싸 안고 달래며 깨우던 셀 수 없는 밤들이 있었다.
동그랗고 귀여운 우리 집 아기였던 상우는 언제나 형을 부러워했다.
"엄마. 왜 나는 형아처럼 다리가 길지 않고 이렇게 짧아? 나도 형아처럼 되고 싶어."
아직 덜 커서 그렇다고, 조금 있으면 너도 형아처럼 클 거라고 아무리 말해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감히 견줄 수 없는 큰 형의 모습을 자신과 견주어 본다는 것. 그건 아마 볼록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왜곡된 자아상이었을 것이다.
큰아이가 오륙 학년 무렵 공부를 시작하면서 상우는 밖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많은 것을 친구들에게서 배웠다. 풍뎅이의 색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아는 아이가 되었다.
상우는 집 근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나는 공부 잘하는 큰아들을 어깨의 뽕처럼 여기며 집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무렵,
같은 아파트에 사는 상우 또래의 여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줌마.
상우 너무 불쌍해요.
학교에서 맨날 혼나요."
다음 날
곧바로 학교로 갔다.
담임 선생님은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마른 여자 선생님이었다. 상우는 늘 정리정돈이 안 되고, 주변이 어수선하다고 했다. 그래서 훈육이 필요했다고.
며칠 뒤 소고기를 양념에 재워 한 소쿠리를 만들어 담임 선생님의 집으로 가져갔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속상하셨어요?"
그 이후로 상우가 혼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아이의 방은 여전히 지저분하다.
상우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나는 학급 자모회 임원이 되어 상우가 혼나는 일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그것이
내 아이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