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02. 균열

by 버티기





어린 성호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내 거, 나는 엄마 거, 아빠는 병원 거."


그만큼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날은 드물었다.


내가 투정을 하면 그는 말했다.

"넌 내가 노는 걸로 보이니?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 개고생을 하는 줄이나 알아?"


그러면 나는 되받아쳤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해서야?

네가 배운 걸 네가 하면서

어떻게 가족을 위한다는 말을 해?"



그토록 친밀하고 다정했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작은 균열 하나가

빙판이 갈라지듯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갔다.


이혼을 깊이 생각해야 했던 시점이 있었다.


이혼녀가 된다는 사실도 두려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부모님이었다.

너무 미안했다.


결혼에 실패했다고 느낀 나는

깊은 우울에 빠졌다.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으며

내일은 깨어나지 않기를,

혹시 깨어난다 해도

이 모든 현실이 꿈이기를 바랐다.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잠시 엄마가 성호를 데려갔다.


태어나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본 적 없던 성호는

외가로 가는 차 안에서

울지도 않고

하염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부모님은

쓰디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가
혼자만의 행복을 포기한다면
부모님도,
사랑하는 아들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건 아닐까?

도대체
내가 얼마나 행복하겠다고
이러고 있는 걸까?

나는 썩는 밀알이 되기로 했다.

내가 죽어 다시 싹을 틔우자고.


그렇게 우리는

이별하지 않기로 했고,

제주도로 삶의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모두 피폐한 상태였다.


절벽 위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을 보고 있으면

바다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떨어지고 싶었다.


그때마다

옆에서

푸릇한 새싹 같은 성호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제주도의 자연은

시간과 함께

나를 조금씩 치유해 주었고


우리의 관계도

상흔을 남긴 채 서서히 아물어 갔다.


성호는 제주도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그해 겨울

둘째 아이 상우가 태어났다.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