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01. 사랑의 경계에서

by 버티기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다. 때마침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해서 의과대학에 다니던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원래 의사들은 수련 과정에서 결혼하기 어려우니 인턴 들어가기 전에 결혼을 하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는 존재감도 없던 아이가 의사 사위를 데려온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사천리로 결혼은 진행되었다.


당시 인턴이던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밤늦게 들어와서 다음 날 새벽에 출근을 했다. 결혼은 했지만 외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통제가 강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그 통제가 갑자기 사라지자 나는 오히려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자유롭다고 느끼기보다 외롭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첫아이를 출산했다. 아빠를 닮아 눈이 크고 예쁜 사내아이였다.

혼자여서 외로울 때라 아이가 생겨 기뻐야 했지만, 나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나의 족쇄로 느꼈다.

엄마가 때때로 도와주셨지만 난 고맙기보다 날 완전하게 도와주지 않고 이것저것 가르쳐주려는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통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이미 체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출산은 내 삶의 궤적을 바꾸었고,

돌봄이라는 이름은

경계를 허무는 통제의 수단이 되었다.


처음에 내 삶의 족쇄라고 생각했던 나의 아들 성호는 방긋방긋 웃으며 내 삶의 중심을 파고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예쁜 아기가 내 차지가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더욱 사랑스러워졌고 아이가 원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또 이 아이는 너무나도 특별해서 다른 사람들과는 직접 말을 하지 않고 나를 통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개의 원이 하나의 원이 될 정도의 애착을 형성했다. 난 이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두 개의 원이 하나가 된 순간,

우리는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심리적 경계가 허물어졌던 것이다.


나는 그 소멸을 사랑이라 착각했다.

아이가 자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나를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을 했던 것도

돌이켜보면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 엄마의 허락을 구하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통제의 시작이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