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대학 생활을 마친 성호가 집으로 돌아왔다.
식구가 다시 모두 모여 살게 된 것이 좋았다. 큰아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든든했다.
성호가 빛을 들고 들어온 것처럼
집안의 분위기가 한결 밝아지고, 더 따뜻해진 것 같았다.
그때까지 군복무를 하지 않았던 성호는 대체복무로 청주 근교로 출퇴근을 했다.
어릴 적부터 사이가 좋았던 성호와 상우는, 예전처럼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아주 오랜만에 식탁에 네 식구가 둘러앉았다.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성호는 하루의 이야기를 밥을 먹으며 쏟아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 아이 중심으로 흘러갔다.
말이 많았다.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었지만, 성호의 말들 속에서 어떤 말들은 상우의 마음을 조금씩 건드리지 않을까 문득 걱정이 되었다.
어릴 때 큰아이 공부시키느라 상우를 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성호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동안 철저히 상우의 엄마로 살아왔다.
형의 엄마가 아닌 '내 엄마'로.
그 시간 덕분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상우의 무언의 언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
보이지 않는 더듬이가 하나 더 달린 것처럼, 굳이 알지 않아도 될 것들까지 알아버리는 아이.
하지만 그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는 않는 아이였다.
두 아들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불편했다.
성호가 집에서 지낸 삼 년의 시간은 분명히 따뜻하고 행복했지만, 동시에 내가 성호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성호의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엄마는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의 나였던 것 같다. 그 사이에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성호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한결같은 말을 반복했다.
"초등학교 오 학년 때, 엄마가 상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그 시간이 그렇게 좋았어. 그때 내가 '뿡뿡이'를 볼 수 있었거든. 그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몰라."
그리고 늘, 비슷한 자리에서 말을 맺었다.
"그래서 내가 서울대에 들어가긴 했지만... 솔직히 엄마가 보내 준 건 맞아."
처음에는 그저 추억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말 끝에 매달린 감정은 감사가 아니었다.
분노였다.
그날 밤,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성호는 왜 저렇게 엄마에게 분노를 가질까. 제 엄마가 저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정말 모르나?"
나는 오래도록 그 아이를 사랑한다고 믿어왔다. 내 시간과 선택은 언제나 성호가 먼저였고, 내 시야에는 늘 성호가 있었다. 그 사이에서 상우는 조용히 시들어 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호의 조용한 분노는, 그 믿음을 조금씩 흔들어 놓았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성호에게는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사랑이라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된다.
성호는
그저 따뜻한 엄마의 품을 원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던 아이.
싫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먼저 하던 아이.
그 아이는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조용히 '착한 아들'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던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성호의 분노는, 사랑이 너무 고파 자신을 억눌러야 했던 소년의 뒤늦은 비명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갈아 넣으며 아들을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사랑'이라고 믿어온 방식이었을 뿐, 그 아이에게는 숨 막히는 통제였나 보다.
그제야, 나는 그 사랑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