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잘 다녀와. 반드시!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

by 버티기





대학에 입학한 뒤 상우는 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자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부쩍 잘생겨 보였다. 친구 집에서 공부를 한다며 이따금 외박을 하기도 했다.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눈치도 보였다.


1학년 동안은 공부도 곧잘 하며,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했다.


하지만 2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앞두게 되자 상우는 온종일 집에만 머물렀다. 방문은 늘 굳게 닫혀 있었고, 좀처럼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고 숨어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동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굳게 닫힌 상우의 방문을 굳이 열지 않았다.


방 안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졌다. 세상이 깨어 있을 때 잠들고, 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깨어 있었다.


당연히 식사 자리에도 나오지 않는 상우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점점 야위어 갔다.


야위어 가는 아들을 위해 냉장고를 선식으로 채워 두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싱크대에 빈 선식 병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집을 비웠을 때 울리던 카드 결제 알람. 그것이 상우가 보내는 유일한 '생존 신호'였다.


입대할 무렵 상우의 몸무게는 50킬로그램이 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논산 훈련소로 향하는 길, 내 안의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져 갔다.


입대라는 거대한 사건이 아이를 무너뜨리지는 않을지, 군대라는 조직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훈련소 입구에서 대기하는 동안 상우는 안절부절못하며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를 했다.


큰아이를 보낼 때 이미 알았다. 신병들이 연병장에 소집되어 오와 열을 맞추고 나면 단체로 부모님께 인사를 한 뒤, 작별의 틈도 없이 줄지어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우와 눈을 맞추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이는 불안한 듯 이리저리 서성대기만 했다.


소집 직전, 나는 가슴 깊이 불안을 꿀꺽 삼키고 상우를 꼭 안아 주었다.


“잘 다녀와”


연병장 저 끝에서도 내 아픈 손가락은 한눈에 들어왔다. 상우는 두려움이 서린 눈망울로 우리를 향해 눈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사라졌다.


‘잘 다녀와.

꼭, 무사히 다녀와야 돼.’





걱정과 달리 상우는 군 생활을 잘 견뎌냈다.


아니, 오히려 건강해졌다.

살도 오르고 근육도 붙었다.


부모라는 온실 속에서 자라던 아이가

낯선 타인들 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제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섰다.


상우는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힘들 때는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면, 가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곁에 있었을 때는 차마 들려주지 않던 속마음과 일상을, 포천이라는 먼 곳에 가서야 비로소 또렷하게 들려주었다.


부대 개방의 날, 우리는 아들을 만나러 갔다.


살이 오르고 늠름해진 상우는 부대 곳곳을 우리 내외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억지로 밥을 먹어 살을 찌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대식당에서 상우와 점심을 함께 먹었다.



상우는

몇 번이나
구역질을 참아 가며

밥을
입안으로
억지로
꾸역꾸역
욱여넣었다.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처절한 식사를 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랬구나.


이렇게 애쓰며,

너는

지금의 네가 된 거였구나.


찌릿하게

가슴 한 구석이

아려 왔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