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불안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by 버티기





상우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섯 번째로 지원했던 학교였다. 중학교 친구들 중 함께 진학한 아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집에서는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였다. 결국 근처로 급히 전세를 얻어 이사를 했다.


다행히 상우는 친구를 잘 사귀었다. 독서실에 간다 해 놓고 가끔 땡땡이도 치고, 또래 아이들처럼 반항도 하고 말썽도 부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이는 늘 조금 버거워 보였다. 성적 때문인지, 엄마인 나 때문인지, 형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들어오면 말없이 현관을 지나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좀처럼 웃지 않았고, 친구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가 내 친구 이름을 뭐라 얘기하면 알아?"


그 말에 나는 더 묻지 못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나의 설명은 아이 앞에서 힘을 잃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말했다.


“너네 아빠는 00이고, 엄마는 00이고,

형은 서울대 다니는데 너는 왜 그래?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돌멩이처럼 아이 가슴에 박혔다.


“나 유전자 ‘빵’ 당한 것 같아”


상우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힌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아이를 달래고 설득했지만, 어떤 말도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의 마음을 끝까지 들어보지 못한 채, 나는 자꾸만 답을 찾으려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상우가 말했다.


“엄마. 나 혼자 인터넷으로 검사해 봤는데,

나 우울증인가 봐. 병원에 가 보고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는 다시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스스로 원해서였다. 대기실은 늘 붐볐고, 예약 시간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칙칙한 초록색 의자에 나란히 앉아 째깍이는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상우는 약을 스스로 챙겨 먹었다. 이번에는 눈에 띄게 마르지도, 손톱을 생살이 드러나도록 물어뜯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불안했다.

상우의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이의 병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나는 어릴 적 '눈 없는 애'였다. 길을 가다 전봇대에 부딪혀 뒤로 튕겨 나가고, 바닥의 물건을 보지 못해 발로 차기 일쑤였다.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덤벙대고 잘 다치는 아이. 그래서 붙은 별명이었다.


상우만큼 이르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우울증을 앓았다. 이유 없이 가라앉았고, 세상은 설명할 수 없이 버거웠다.


ADHD든 우울증이든, 이름이 무엇이든

이런 기질을 아들에게 물려준 것 같아 미안했다.


남편과 함께 돌아오던 어느 날,

나는 몇 번이나 울며 말했다.


“여보. 상우는 평생 당신이 먹여 살려야 해.”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던 건 나만이 아니었을 텐데.

나의 미숙함이

곁에 있던 사람들까지 더 힘들게 했던 날들이었다.


애타던 날들을 지나,

상우는 수시 전형으로 지역의 대학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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