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다리는 법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들》

by 버티기





군대에서의 시간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 같다고 상우는 말하곤 했다.

그 영겁 같던 시간이 흐른 뒤 상우는 제대했다. 입대할 때보다 체중이 늘고 근육도 단단해져 한결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상우는 군대에서 이루어낸 변화를 이어 가려 애썼다. 몇 가지 홈트레이닝 장비를 온라인으로 주문했고, 끼니를 챙기며 단백질과 영양 보충제도 먹었다.


장비가 도착하던 날, 거실에서 턱걸이를 하며 상우가 싱그럽게 웃었다. 내게는 그 미소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군대라는 규칙적인 환경이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 귀한 순간을 영상에 담았다.


아직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았던 3월, 상우는 3학년으로 복학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름다운 청년이 되었던 상우는 다시 조금씩 시들어 갔다. 집에 들여놓은 운동기구는 어느새 옷걸이가 되어 갔고, 단단하던 근육도 사라졌다.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상우가 조심스럽게 식탁에 앉아 말했다. 휴학하고 싶다고.


나는 말했다.

“이제 1년 정도만 지나면 졸업이잖아.

조금만 더 버티면 안 되겠니?”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공기가 갑자기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상우는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코끝이 붉어지고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또렷이 들었다.


‘어떻게 엄마는 그렇게 잔인할 수 있어?’


대학 졸업이 아들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편과 상의했고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휴학을 결정했다. 나는 상우의 휴학이 자퇴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시 우울해져 비쩍 마른 채 방 안에 틀어박히던 예전의 상우로 돌아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생각했다. 비록 방구석 은둔 청년이 되더라도 그 아이가 내 곁에 살아 있음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휴학 서류를 제출하고 돌아온 상우는 큰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날 함께 차를 마시며 나는 상우에게 말했다.


“상우야, 지금은 어떻게든 너 자신을 회복하고 치유해야 하는 시간이야. 엄마는 ‘한 학기만 쉬고 바로 복학해라’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아. 그러니 충분히 회복해.


그리고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개인위생만큼은 지켜 달라고 덧붙였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상우는 또 예전처럼 비쩍 말라갔고,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날은 게임만 하는 것 같았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 같았다. 가끔은 차를 몰고 한참씩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집으로 책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읽는 건지 쌓아 두는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문 앞에 책이 하나둘 놓여 있었다.


살을 베일 듯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상우가 말했다.

“엄마, 호수공원에 산책 갈래?”


나는 기꺼이 따라나섰다.


상우는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이 호수가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고 했다. 종이컵의 따스함이 손을 녹여 주고 향긋한 커피 향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그때 상우가 말했다.


“엄마, 나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유료 동호회에 가입해 글을 써 보고 싶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첫 번째 생각이 튀어 올랐다.


‘너는 어쩜 그렇게

생산적이지 못한 것만 하고 싶니?’


하지만 찰나의 순간 마음은 스스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던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니 정말 다행이네.’


다행히 나는 두 번째 생각으로 반응했다.


나는 글쓰기가 어느 정도 자가 치유의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이 작은 희망이

부디 꺾이지 않기를 바랐다.


살을 베일 것처럼 차갑던

그날의 바람이

어쩐지 싱그럽게 느껴졌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