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연대, 회색의 Patric

낯선 아일랜드 억양 속에서 마주한 우리의 한(恨)

by 버티기





파드릭(Patrick)을 떠올릴 때면 늘 회색이 생각난다. 시간이 오래되어 머리가 회색이었는지 눈동자가 회색이었는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그에게서는 항상 형언할 수 없는 회색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에게서는 흔하지 않은 색. 검정과 흰색을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중용의 색. 그는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사실 아일랜드인에게 회색은 숙명과도 같은 색이다. 일 년 중 절반 가까이 비가 내리고 낮은 구름이 드리우는 아일랜드의 하늘은 늘 은은한 회색빛을 머금고 있다. 대서양의 습한 바람을 견디며 척박한 땅에 쌓아 올린 수만 개의 돌담(Stone walls) 또한 무심한 회색이다. 그에게서 느껴졌던 회색은 단순히 무채색이 아니라, 조국의 궂은 날씨와 거친 돌밭을 묵묵히 견뎌온 이들이 몸에 새긴 정체성의 색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에게는 대체로 미국식 영어 억양에 익숙하다. 특별히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에서 따로 학습하지 않는 이상, 귀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길들여진다. 그런 나에게 아일랜드의 억양은 낯설고도 어려웠다.


미국식 발음이 목구멍 안쪽에서 둥글게 울린다면, 영국식은 그보다 앞쪽 치아 근처에서 또박또박 맺힌다. 그리고 아일랜드 발음은 영국식과 유사하면서도 마치 혀끝에서 잘게 부서져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처음 그가 자기 이름을 소개했을 때, 나는 그것을 '파딕' 쯤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칠판에 정성스레 적힌 이름은 'Patrick'이었다. 미국식이었다면 '패트릭'이었겠지만, 내 귀에는 '파딕'과 '파드릭' 사이의 낯선 음절로 내려앉았다.


그의 투박한 억양을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가 머뭇거리며 당황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이따금 매끄러운 영국식 발음으로 슬며시 목소리를 고쳐 말하곤 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I’ll try to make it easier for you.”

(여러분을 위해 조금 더 쉽게 말해 볼게요.)


발음은 낯설었지만 파드릭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한국인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어느 날 한국과 아일랜드가 공유하는 ‘역사의 흉터’에 대해 나지막이 입을 뗐다.


“Ireland also went through a painful history under British rule.”

(아일랜드 역시 영국의 지배 아래 고통스러운 역사를 겪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아일랜드와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영국의 오랜 식민 지배 아래 모국어인 게일(Gaelic)어를 잃어가야 했던 아일랜드의 비극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언어의 상실’과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척박한 땅에서 감자 하나에 의지해 버티다 겪은 대기근의 역사는 우리의 보릿고개와 겹쳐졌고,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끝내 굴하지 않았던 저항 정신은 우리네 민족성과 맞닿아 있었다.


그는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장 뒤에 숨겨진 민족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가진 특유의 '한(恨)' 서린 정서를, 그는 먼 이국땅의 역사적 동질감을 통해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서울 사람이 경상도나 제주도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듯, 아일랜드인인 그가 영국식 발음을 연기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다. 하지만 그가 애써 익숙한 억양을 빌려 우리에게 다가오려 했던 것은, 아마도 서로의 아픔을 알아보는 뜨거운 연대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당시 나는 동이 트기도 전,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영어학원 새벽반으로 향하곤 했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마주했던 파드릭과의 회화 시간은 단순히 유창한 발음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타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인의 삶 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경이로운 여정이었다.


캄캄한 어둠을 뚫고 마주했던 그 발견의 순간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그날 아침의 차갑지만 선명했던 새벽 공기처럼 잊을 수 없는 감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