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여기 공연장 같네요. 음악회를 하면 참 좋겠어요. 춤을 춰도 좋겠는데요?"
'분오리돈대'를 둘러보던 사람들이 찬탄을 합니다. 공연장 같다면서 춤을 출듯이 두 팔을 들어 흔들기까지 합니다. 분오리 돈대는 강화의 54개 돈대 중 하나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습니다. 근처에 강화의 유명 관광지인 동막해수욕장이 있어 분오리 돈대를 찾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돈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봅니다. 눈 앞에 끝없는 갯벌이 펼쳐집니다. 돈대가 해안가 높은 언덕에 있는 조선시대 군 초소라고 하더니 과연 분오리돈대는 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분오리돈대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마니산의 줄기가 뻗어내려오다 바다를 앞에 두고 멈춘 곳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공연장 같은 돈대, 원래는 군사시설
그날의 느낌이 하도 좋아서 그 뒤로도 분오리돈대를 자주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돈대는 늘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봄 여름이 달랐고 가을과 겨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오리돈대와 갯벌은 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돈대에 오르면 마음이 풀어집니다.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 이도 있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으면서 환호작약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잠잠해집니다. 석축에 피어 있는 돌이끼를 보노라면 저도 모르게 숙연해집니다. 이 나라와 이 강토를 지키기 위한 선인들의 노고에 가슴이 묵지근해집니다.
강화에는 분오리돈대와 같은 돈대들이 54개나 있습니다. ‘돈대(墩臺)’는 성곽 시설의 하나로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평지보다 높은 평평한 땅에 설치한 소규모 군사 기지를 말합니다. 평지에 있는 성에서는 보통 가장 높은 평지에 높게 축조했으며, 해안에 있는 성에서는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주로 설치했습니다. 외부는 성곽으로 축조되어 있으나 보통 내부에는 군사 시설이 들어서서 포를 쏘거나 사방을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강화도가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많은 군사시설을 만든 것일까요.
두 번의 왜란(倭亂)과 또 호란(胡亂)을 겪은 뒤 조선의 조정에서는 방비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효종 때부터 강화를 특별히 생각하며 군사시설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숙종은 강화를 더 주목했습니다. 숙종은 강화도를 안전한 보장지처로 만들기 위해 동서남북 사방 해안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돈대들을 축조했습니다. 숙종은 강화에 48개의 돈대를 만들었습니다.
돈대를 쌓으려면 돌이 많이 필요했을 겁니다. 다행히 강화도에는 돌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 많았습니다. 마니산과 별립산 그리고 매음도(현 석모도)를 비롯한 딸린 섬들에서 돌을 얻었습니다. 산에서 떼어낸 돌들을 옮기는 것도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돌을 바닷가까지 가져오자면 오죽 많은 공력이 필요했을까요.
질퍽이는 갯벌을 만났을 때는 일이 몇 배나 더 힘들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쌓은 돈대이니 규모가 조금 작다고 어찌 가볍게 보고 지나칠 수 있을까요.
국책사업이었던 54개 돈대 축조 공사
돈대 공사에는 인력 또한 많이 투입 되었겠지요. 기록에 의하면 약 400명의 석수와 그 외 대장장이 등 1,500여 명이 투입이 되었으며 어영군의 군사도 4,300명이나 와서 성을 쌓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각 도의 승군(僧軍) 8,000명도 합류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고 하니 총동원 인원이 대강 어림잡아도 1만5,000명에 육박합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물자와 사람을 투입해서 마침내 숙종 5년인 1679년에 48돈대가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돈대 축조의 총책임자였던 병조판서 김석주는 숙종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를 올립니다.
"신이 강화유수 윤이제를 만나 돈대 역사의 진행 상황을 자세히 물어보니 승군이 취역한 지 이미 한 달이 넘었으나 말썽을 부린 일이 없다고 하였사옵니다. 또 중군인 윤천뢰도 말하기를 '어영군은 모두 익히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어서 어제와 오늘 행군할 때에도 꽤 질서를 지켰으니 앞으로 힘써 일을 할 것이고, 게으름을 피우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뒤로는 돈대 역사에 관계된 모든 일은 반드시 유수와 상의하여 시행하라고 윤천뢰에게 당부하였습니다. - <비변사등록>. 숙종 5년(1679) 4월 8일
이처럼 강화에 돈대를 쌓는 일은 병조판서가 총책임을 맡을 정도로 중요한 국책사업이었습니다. 이후 숙종은 4곳의 돈대를 더 설치하였고 영조와 고종 때에도 돈대를 쌓았습니다. 1999년에 육군박물관이 조사를 한 바에 의하면 현재 강화에 남아 있는 돈대는 모두 54곳입니다.
숙종 4년 11월 4일의 <비변사등록>기록에 의하면 돈대를 쌓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평지에 성을 쌓는 경우에는 그 높이를 약 3장(6m)으로 했으며 산에 돈대를 쌓을 경우에는 산을 따라 돈대의 성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성 위에 낮게 덧쌓은 담인 성가퀴를 6척(약 120cm) 높이로 덧쌓았으며, 포를 쏠 수 있도록 전면 2곳과 좌우로 각 1곳씩 전체 4곳에 포혈을 만들었습니다.
돈대는 지형에 따라 각각 다르게 만들었는데, 네모 모양의 방형(方形)과 둥근 형태, 또는 ㄷ자형으로 쌓기도 했습니다. 돈대의 둘레는 대개 동서 약 30~40m, 남북 약 40여m에 달하며 벽체의 두께는 약 3~4m 내외에 달할 정도로 두껍게 쌓았습니다.
강화해협에는 특별히 20개의 돈대를...
강화의 동쪽 바닷가는 수도인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서 다른 곳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대대 규모의 군사시설인 ‘진’과 ‘보’를 비롯해서 소대급인 ‘돈대’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축조되었습니다.
강화에 있는 12개의 진과 보 가운데 절반인 6개가 동쪽 해안인 강화해협을 지키는 데 있었고, 54개에 달하는 돈대 중 20개가 역시 강화해협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돈대의 상급기관인 진과 보에는 100명에서 170명쯤의 병사들이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진과 보마다 서너 개의 돈대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각 돈대마다 30명 내외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으면서 해안을 경비했던 셈입니다. 그러니 54곳의 돈대를 지키자면 1,500명의 병사들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강화나들길’ 2코스인 ‘호국돈대길’은 강화의 동쪽 해안에 있는 돈대들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동쪽 해안에는 월곶진과 갑곶진, 그리고 용진진,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이렇게 여섯 개의 진과 보가 있습니다.
월곶진은 강화 동북쪽에 있는데, 서해에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곳이라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월곶진 소속의 돈대로는 적북돈, 휴암돈, 월곶돈, 옥창돈이 있습니다.
강화로 들어오는 나루터인 갑곶나루 인근에는 제물진이 있었습니다. 망해돈, 제승돈, 염주돈, 갑곶돈은 제물진에 소속되어 강화 앞 바다를 지켰습니다. 또 용진진에는 가리산돈, 좌강돈, 용당돈이 있었고 광성보는 화도돈, 오두돈, 광성돈, 용두돈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또 덕진진과 초지진에도 손항돈과 덕진돈 그리고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 등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강화 동쪽 해안을 따라 총 20개의 돈대가 있어서 서해에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길목을 물 샐 틈 없이 방비했습니다. 그 밖의 서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의 해안을 따라서도 34개의 돈대들이 있어서 바다를 통해서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돈대를 찾아 떠나는 여행
세월의 흐름 앞에 돈대들은 무너지고 허물어졌습니다. 최근에 와서 돈대들을 다시 쌓고 보수하고 있지만 아직도 방치되어 있는 돈대들이 많은 형편입니다. 잡초가 무성한 돈대 터를 보면 세월유수와 함께 인생무상도 느낍니다.
돈대는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루 중에도 썰물과 밀물의 물때에 따라 풍경이 또 달라집니다. 또 돈대마다 각각 다른 특징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돈대들이 바닷가 언덕에 위치해 있으니 주변 경관이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돈대야말로 강화의 숨어있는 보물입니다. 돈대로 가는 길이 없어 풀숲을 헤맬 수도 있습니다. 석축이 허물어져서 잡초에 뒤덮여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끼 낀 석축을 만나고, 돈대 위에 올라서서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과거가 현재로 다가옵니다.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우리 조상님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들이 삼아 떠나는 ‘강화나들길’에는 돈대가 있습니다. 돈대에서는 누구라도 춤꾼이 되고 노래패가 됩니다. 땅에 등을 대고 누우면 하늘과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람과 구름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과 한참 놀다보면 세상의 일들은 저만치 물러납니다. 이렇게 돈대는 모든 걸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줍니다.
이번 주말에는 돈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요. 한 해가 다 가는 올해의 마지막 주말이니 그 의미가 더 클 것 같습니다. 돈대에 올라서서 물이 빠진 갯벌을 안아보기도 하고 빈 들판도 한번 더듬어 봅시다. 그러노라면 햇살도 한참 동안 돈대에 머물렀다 가겠지요.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 햇살이지만 돈대에서만은 조금 더 넉넉하게 비춰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