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펜싱 선생님>이 그린 희망
최근에 펜싱을 담은 영화를 한 편 보았습니다. '에스토니아'의 전설적인 펜싱 영웅인 ‘엔델 넬리스’(1925-1993)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나의 펜싱 선생님(The Fencer)>이라는 영화입니다. 펜싱도 낯설었지만 그보다 '에스토니아'라는 나라가 더 생소했습니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북유럽의 발틱해에 위치해 있으며 핀란드와 러시아를 이웃으로 하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에스토니아는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압제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잠시 독일에 점령되기도 했습니다. 그후 다시 소련의 지배 아래 놓였지만 1991년 8월에 독립을 했다고 하니, 어찌 보면 신생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면적은 45,228㎢로 한반도의 약 1/5이며 인구는 약 150만 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에스토니아의 지리적인 위치며 과거에 처한 상황들을 보니 우리나라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합병되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일본을 대신해서 전장에 나갔던 것처럼 에스토니아의 젊은이들은 2차세계대전 때 독일군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댓가를 혹독하게 치릅니다. 독일군으로 참전한 청년들은 반역자로 몰렸고 소련의 비밀경찰에 의해 감시당하거나 체포됩니다.
에스토니아 청년들, 독일군에 징집되다
영화의 주인공인 ‘엔델’도 18살에 독일군에 징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갔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라는 죄명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에스토니아는 독일 치하에 있었고, 전쟁 후에는 소련의 지배를 받습니다. 소련은 엔델과 같은 전쟁 부역자들을 찾아 죄를 묻습니다.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시작된 1953년, 엔델은 어머니의 성을 따서 이름을 바꾸고 시골로 숨어듭니다. 장래가 기대되는 펜싱선수였던 그는 이제 도망자 신세입니다. 추적의 손길이 언제 미칠지 모릅니다. 그의 삶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뿌연 김을 내뿜으며 기차가 도착합니다. 역사(驛舍) 안은 온통 연무에 휩싸입니다. 큰 가방을 어깨에 멘 청년이 기차에서 내립니다. 그는 불안한 듯 사방을 둘러봅니다.
시골로 숨어든 엔델은 그곳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원해서 온 곳이 아니었기에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런 그에게 교장은 주말인 토요일에 스키교실을 열 것을 주문합니다. 체육관은 낡고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데다 장비도 하나 없는데 어떻게 스키교실을 열 수 있단 말인가요. 난감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날, 펜싱 연습을 하는 엔델을 본 여자 아이 하나가 펜싱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시작된 펜싱교실, 비로소 엔델은 삶의 의욕을 느끼며 아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에게 펜싱은 신기하고 흥미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관료적인 교장은 펜싱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교장은 펜싱이 ‘봉건주의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엘리트 운동’이라며 펜싱클럽을 없애라고 합니다.
소련의 감시 체제에 놓인 에스토니아
스탈린의 철권통치 아래 놓여있는 에스토니아는 감시체제에 얽매여 있습니다. 소련 당국의 눈치만 보며 살아가던 주민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를 꺼려합니다.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펜싱을 하며 변화하는 것을 보고 펜싱부 없애는 것을 속으로는 반대하지만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펜싱은 봉건적인 스포츠가 아니며 칼 마르크스도 젊은 시절에 펜싱을 했다'고 말하며 펜싱부 폐지에 반대의 뜻을 표합니다. 그제야 다른 학부모들도 조심스레 손을 들고 그 의견에 동조를 합니다. 그래서 펜싱클럽은 유지됩니다.
펜싱은 신체의 급소를 검으로 찔러 점수를 내는 경기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찌르기'보다 '거리두기'가 더 중요합니다. 예리한 거리 감각으로 상대와 거리두기를 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상대의 칼끝은 여지없이 내 신체를 관통합니다. 또 상대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 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용히 움직이다 기회가 보이면 가차 없이 공격해야 합니다. 예민한 감각과 거리두기는 도망자 신세인 엔델이 취할 행동 방식이기도 합니다.
거리두기와 찌르기
엔델은 거리두기에 실패했습니다. 아이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했는데 엔델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더구나 레닌그라드에서 열리는 펜싱대회에 아이들을 출전시키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엔델이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가 많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죽거나 실종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헛된 기다림을 주면 안 된다고 엔델에게 주의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빠가 있는 애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요? 토마스도, 마르타도 아빠가 죽고 없어요. 얀의 아빠는 실종되었고 그 애 할아버지도 잡혀 갔어요.” 엔델마저 아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떠날까 봐 동료 교사는 염려를 합니다.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 주기로 한 걸까요. 아니면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는 애들에게 결코 너희들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었던 걸일지도 모릅니다. 엔델은 위험을 무릅쓰고 레닌그라드에서 열리는 펜싱대회에 학생들을 출전시킵니다. 시골학교의 체육선생님으로 조용히 살면 엔델에게 위험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회에 나가면 그의 신분이 탄로가 나서 체포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엔델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대회에 참여합니다.
엔델은 곧 신분이 노출됩니다. 펜싱 세계에서 엔델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 신분 노출은 당연한 것이었지요. 체포될 위험에 처하자 한창 경기중인 아이들을 남겨두고 황급히 경기 현장을 떠납니다. 그러나 차마 아이들을 버릴 수 없었던 엔델은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기장으로 돌아옵니다.
희망을 선물하다
도망자 신세인 엔델에게 현실은 늘 불확실하고 미래 역시 암담하기만 합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그런 기회가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엔델의 처지를 말해주는 듯 영화 속 화면은 늘 회색빛이었습니다. 마치 안개가 낀 듯 뿌옇고 막막했습니다.
그런 삶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장면에서는 늘 노란빛이 머물렀습니다. 페인트칠이 벗겨져서 우중충해 보이는 체육관이지만 펜싱을 하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노란 햇살이 비추었습니다. 그 빛은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체포되어 떠났던 엔델이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큰 가방을 어깨에 맨 엔델이 기차에서 내립니다.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그를 향해 달려갑니다. 아이들 뒤에는 마음을 나누었던 여 선생님도 서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엔델이 천천히 다가갑니다. 그리고 활짝 팔을 벌려 아이들을 안습니다.
이제 그들 곁에는 밝은 빛이 가득합니다. 뿌연 연무 대신 환한 기운이 넘실댑니다. 엔델과 아이들이 걸어갈 미래를 보여주는 듯 화면은 온통 밝고 환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 마음도 함께 따뜻해져 왔습니다.
나의 펜싱 선생님 원제 : The Fencer
감독 : 클라우스 해로 Klaus Haro, Klaus Härö
출연 : Mart Avandi, Ursula Ratasepp 등
제33회 뮌헨국제영화제 (2015) (독일영화평화상-특별상)
2016, 제73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2016,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