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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숙 Oct 27. 2021

진주의 저주? 그의 아들은 왜 죽어야 했나

[리뷰] 세월을 뛰어넘는 감동... 영화 <진주>(La Perla)


                             

몇년 전 가을에 친정언니와 중국 북경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자매끼리의 여행은 처음이었던지라 우리는 흥분했습니다. 그래서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을 부러 사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진주도 있었습니다.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천제단 인근에는 진주로 만든 장신구들을 파는 큰 쇼핑센터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렀던 우리 자매는 그만 살짝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윳빛 진주가 발에 밟힐 듯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귀고리와 목걸이를 사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이 진품인지 아니면 가짜인지의 여부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가격이 헐했으니 가짜여도 괜찮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존 스타인벡이 각색한 영화, <진주>     


'진주(眞珠)'는 이름 그대로 진귀한 보석입니다. 팥알만 한 크기의 진주 한 알의 가격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쌉니다. 귀해서 더 갖고 싶은 게 보석이겠지요. 가지지 못했을 때는 원하지만 막상 손에 넣으면 혹시 잃거나 남의 손을 탈까 봐 염려가 되는 게 또 보석이기도 합니다.     


1947년에 만들어진 <진주>(La Perla)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을 시나리오로 각색해서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각색하고 할리우드의 메이저급 영화사가 아닌 멕시코의 '에밀리오 페르난데즈' 감독에게 건네줍니다.     


이 영화는 그해의 골든 글러브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할 정도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거친 바다를 배경으로 멕시코의 하층민들의 삶을 절묘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70여년 전 옛날 영화인데도 여전히 감동을 줍니다. 명작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나 봅니다.    



  

'퀴노'는 바다에 목숨을 걸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잠수부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이 전갈에 물려 생사를 헤매지만 가난해서 병원에 찾아갈 돈도 없습니다. 돈에 눈이 먼 의사는 가난한 환자들을 내 몰라라 합니다. 아들을 안고 몇 시간 째 기다리던 퀴노와 그의 아내를 의사는 끝내 내치고 맙니다.     


아들에게 다른 삶을 줄 거야     


바람이 불어 여러 날 바다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콩 한 줌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바람을 살피던 퀴노는 바다로 나갑니다. 칼 한 자루를 옆구리에 차고 바다 깊이 자맥질해 들어갑니다. 그가 찾는 것은 바로 '진주'. 운이 좋아 진주를 품은 조개를 발견하면 당분간 먹고 살 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퀴노에게 신이 선물을 주었습니다. 숨을 참고 바다 속 저 아래로 내려간 그의 눈에 커다란 조개가 하나 보입니다. 바로 진주를 품고 있는 조개입니다. 여태껏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한 크고 아름다운 진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앙의 시작이었습니다.     


진주를 탐내는 사람들이 그의 목숨을 노립니다. 퀴노의 아내는 진주를 바다에 던져버리자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일확천금을 손에 넣었는데 어찌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요. 끝내 퀴노와 그의 아내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마을을 몰래 떠나야만 할 처지에 놓입니다.


'조개의 눈물'이라 불리는 진주는 부와 기쁨을 주었지만 또한 슬픔과 고통 또한 안겨 주었습니다. 퀴노의 꿈은 소박했지만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이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퀴노의 꿈은 소박합니다. 오직 아들을 공부 시켜야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안겨 주고 싶었습니다.  


"후안티노는 공부를 시킬 거야. 상류층 사람이 되도록 할 거야."     


퀴노의 바람은 좋은 옷도 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식에게 공부를 시켜 아들은 자신처럼 하류 인생이 아닌 상류층 사람으로 살기를 바랬을 뿐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에게 기대를 겁니다. 내 자식은 나와 달리 살기를 바랍니다. 서툴고 부족해서 실수 투성이였던 내 삶을 아들은 닮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식에게 거는 희망이 있어서 부모는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삽니다. 퀴노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이야 말해 더 무엇 할까요. 그의 소망은 오직 아들을 공부 시키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무참히 깨어지고 맙니다.     


조개의 눈물진주의 저주     


탐욕에 눈이 먼 자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냥개를 앞세우고 '퀴노'를 추격합니다. 마치 사냥감을 쫓듯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뒤쫓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천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석을 탐하는 자들은 형제끼리 서로 죽이기까지 합니다.      


진주의 저주였을까요. 그 어느 누구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합니다. 진주를 탐했던 자들은 추악한 얼굴로 죽어갈 뿐입니다. 퀴노 역시 소중한 아들을 잃었습니다. 진주를 바다에 던져 버리자는 아내의 간청을 들었더라면 아들을 잃지 않았을 것을...     


자식을 가르치고 아내와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퀴노의 꿈은 소박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데 어떻게 진주를 버릴 수 있단 말인가요. 퀴노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아들을 잃고서야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퀴노는 깨닫습니다. 아내와 함께 손을 맞잡고 바다에 진주를 던져버립니다. 거대한 파도가 진주를 삼킵니다. 이제 그들 부부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도 없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도 없습니다. 진주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형벌이었던 것일까요.  




             


진주(La perla,1947)


감독 : 에밀리오 페르난데즈(Emilio Fernandez) 

출연 : Pedro Armendáriz ... Quino

         María Elena Marqués ... Juana

         Fernando Wagner... Dealer 1

         Gilberto González ... Aid 1     


수상 내역 :

1947, Venice Film Festival 촬영상

1948, Ariel Awards, Mexico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 수상

1949, Golden Globes, USA 촬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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