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하지 않는 계획

2017 8 7 밀라노의 밤

by 이오늘


밀라노에서 계획한 일은 세 가지였다. 두오모 성당 오르기, 다빈치 최후의만찬 감상하기, 젤라또 먹기. 결국 계획 중 두 가지는 실패했고 한 가지만 해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도시였다.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어쩐지 '계획'이라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어깨가 무겁다. 그 말에 언제부터 겁을 먹었나 돌이켜보니 ‘생활계획표’, ‘여름방학 계획서’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그걸 늘 빽빽이 채우려고 노력했었다. 옆자리 짝꿍이나 앞자리 친구의 것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언제나 과장을 보태 촘촘히 채워진 생활계획표를 칭찬했고, 그중 내 것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른이 되고 더 이상 내 계획표를 채점할 선생님이 없는데도, 계획이라는 말의 권위를 외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습관처럼 늘 계획을 짠다.

사실 밀라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일은 ‘거리의 사람들 구경하기’였다. 덕분에 미리 준비했던 두 가지 계획은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런대로 기분이 좋다. 거리를 걷는 일은 즐거웠고, 계획이 맘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은 꽤 홀가분했기 때문이다. 우린 성당이 보이는 광장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인터넷으로 최후의만찬을 감상했다. 그리고 초코맛 젤라또가 일품이라며 기뻐했다.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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