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인문학
아빠와의 험한 장난이 어느날은 꽤 만족스럽게 끝나고,
어떤 날은 강도조절 실패로 인한 눈물로 맺음을 한다.
어제는 후자의 날이었고, 아이는 눈물을 훔치다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 독서도 마다하고 서운한 마음을 끌어안고 잠이 들 아이 생각에
나도 속이 편치만은 않았다.
"잘자"
"......"
"사랑해"
"......"
나는 멋쩍어하는 남편에게 괜찮다는 사인으로 끄덕끄덕을 보여준 뒤
하루의 피곤을 떼어내기 위해 따끈한 전기장판으로 기어들어갔다.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눈이 떠졌다.
새벽 5시.
나의 몸은 더 자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고,
나의 뇌는 서서히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며 선명한 정신을 확장하고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새벽.
좋아하는 작가님이 내 준 숙제가 생각났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지혜는 무엇인가.’
아이에게 한번 물어봐도 좋을 것 같다.
엄마에게 물려받고 싶은 지혜는 무엇이니?
'없어요'
라고 하면 어쩌지.
앞으로 지혜를 찾아 새 옷 입듯 하나씩 걸치면 되겠지.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감사하는 마음을 꼭 끌어안고 살면 좋겠다.
이건 내가 이미 갖고 있어서 물려주고 싶은 지혜는 아니다.
나도 가지려고 노력하는 지혜이다.
초보엄마 시절엔 그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남편도 거추장스러웠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안고 달래다
어쩌라고! 아이를 무심히 침대에 내려놓은 적도 있었다.
힘들다는 생각이 나의 뇌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가 들어올 틈은 개미 눈물만큼도 없었다.
지금은 아이 둘 다 10대의 반열에 올라 가끔 울기는 해도,
밥을 스스로 먹는 것은 물론 라면도 끓일 줄 알고,
양치 세수 목욕 같은 인간의 기본 수양도 엄마 도움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아빠 생일에 ‘어른의 감정 조절법’, ‘당신은 해내고야 마는 사람’
같은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스스로 책가방을 메고 등교도 씩씩하게 잘한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독서와 낭독 필사를 하면서 조금씩 감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내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쉼 없이 엄마를 부르고,
나의 요리를 맛있다고 먹어주는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게 되었다.
“오늘 엄마한테 재밌는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엄마를 보고 밝게 웃어줘서 고마워.”
“너의 체온을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이렇게 말하고 나면 아이들은 온전히 사랑스러운 존재로 느껴지고,
행복이 내 안에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이 느낌이 정말 좋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세상에 대한 감사로 점점 번져나갔다.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도 고맙고, 반찬가게, 돈까스집, 학교, 병원, 도서관 등
그 모든 게 나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심지어 거추장스러웠던 남편까지도.
이렇게 좋은 느낌을 우리 아이들도 반드시 경험하면 좋겠다.
고마움은 남을 칭찬한다라는 의미 뿐 아니라,
내 안에 행복의 불을 지피는 단어였다.
그래서 요즘엔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 안에 행복을 많이 쌓아가려고.
마라탕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것,
겨울에 나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여러 가지 물건들,
해양동물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
가을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
우리 아이들이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이 아닌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더욱 귀한 가치를 발견하고, 매일매일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