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치면 어떨까?”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 부모님께 검정고시를 이야기했다가 비 오는 날에 먼지 나도록 맞은 적이 있다. 어린 나이의 치기가 아닌 정해진 틀이나 규칙이 싫었고 자유롭고 싶었다. 학교가 그렇게도 가기 싫었던 것은 아마도 유치원 시절의 그것과 맥을 같이 했음이라 생각된다.
전생에 히피의 삶을 살았는지 어린 시절은 물론 성인이 된 지금도 틀에 박힌 것은 어렵다.
학교, 조직, 군대, 회사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들이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부에 가입했더라면,
고등학교 시절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쳤더라면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어려서부터 난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은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을 하기 바빴고 중학교 시절에는 무협지와 만화책에 빠져 살아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와 친해지는 계기가 된 건 중학교 2학년 시절 집 근처에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무렵 교육제도의 개편도 있었는데 고등학교 진학 시험인 연합고사가 폐지되고 내신 성적으로만 고등학교에 가게 되는 제도로 바뀌었다. 새롭게 생긴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내신 성적이 전교 20% 안에 들어야지 가능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공부와 친해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남자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까지 남고를 다니기가 너무나 싫었다. 무협지와 만화책을 떠나보내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보기 시작했고 부모님께 공부가 하고 싶다고 졸라 수학 개인 과외를 받는 전무후무한 일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기회가 남아있었던 점은 1학년 때의 성적이 20%, 2학년 때의 성적 30%, 3학년 때의 성적 50%가 합산되어 내신 성적으로 산출되기에 늦은 시기는 아녔다. 목표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오로지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가겠다는 신념 하나로 공부에 매달린 결과 졸업 당시 전교 18%의 내신 성적으로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지원할 수 있었다.
1 지망으로 원했던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그리 기쁘지가 않았다. 입학 전망해도 남녀 합반이었는데 갑자기 분반으로 바뀐 것이다. 단기 목표는 달성했으나 다음 목표를 세우지 못한 채 지루한 생활이 반복되었다. 중학교 때는 그나마 공부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들이 섞여 있었지만 내신 20%의 안의 아이들이 모인 인문계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목표가 없다 보니 다시 원래의 공부와 거리가 먼 아이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내신 성적은 거의 최하 등급이었고 야간 자율 학습과 보충학습은 도망가거나 빼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매번 도망가서 혼나는 것도 싫었고 그렇다고 야간 자율 학습을 밤늦게까지 하자니 그것도 못 할 짓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정당하게 야간자율 학습을 빠질 방법을 고안했다. 바로 자격증 특별 수시 전형으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당시 대학에 가는 방법에는 수능 외에도 특별 수시전형이라고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자격증 특별전형은 컴퓨터 자격증 5개가 있으면 갈 수 있는 제도였다. 당장 부모님께 강력한 의지를 어필했고 어차피 공부로 대학을 가기는 글렀다는 걸 아셨는지 흔쾌히 승낙하셨다. 그 후로 당당하게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컴퓨터 학원에 가서 자격증 수업을 받았다. 대학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인지 컴퓨터가 적성에 맞아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열심히 학원에 다녔고 단시간에 여러 개의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10개 이상의 자격증 중에서 절반 이상이 이 시기에 획득한 자격증이다.
공부를 안 해도 특별 전형으로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장밋빛 꿈은 고등학교 3학년 특별 전형 수시모집 기간이 되어서야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자격증 5개 이상을 획득 후 기쁜 마음으로 모집 공고를 확인했는데 일정 등급 이상 내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지원조차 할 수 없다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간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은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대학을 갈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정확하게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 컸지만, 지원을 해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지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최하 등급의 내신 성적이라 둘째 치더라도 수능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선택한 것은 체대 응시였다. 전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남은 시간 동안 공부보다는 체대 실기를 준비하는 편이 가능성이 높으리라 판단했다. 남은 기간 체대 입시를 준비해서 2곳의 체육학과에 지원했고 실기시험을 쳤다. 다행히 실기시험은 체대 준비생들만큼의 평균적인 점수를 받았으나 이번에도 내신 성적이 문제였다. 실업계에서 온 친구들은 거의 내신 1등급의 상위 등급이었고 난 14등급의 최하등급에 가까웠다.
결국, 실기점수와 내신 성적을 합산해서 내는 총점수에서 밀려 지원한 2곳 모두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특별 수시전형에 이어 차선책으로 택한 것마저 실패해 버린 것이다.
정녕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