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군대 생활도 어느덧 2년여의 시간이 흘러 다시 사회로 복귀했다.
군대를 제대하자 세상을 다 가진 마음으로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런 자신감은 급기야 또 하나의 무모한 도전을 기획하게 된다.
무전여행!!
장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로 정했고 일정은 4박 5일, 총경비는 8만 원
무전여행임에도 8원 만이라는 경비를 측정한 것은 제주도 왕복 배편이 8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모한 도전에 함께할 전우까지 2명을 섭외했다. 군대를 갓 제대한 패기 넘치는 20대 초반의 무전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계절은 여름이었기에 최소한의 옷가지를 챙겨서 짐을 쌌다. 젊은이들의 무전여행 취지를 살리기 위해 조그마한 태극기도 하나씩 준비했다. 이 장치는 여행에서 우리를 도와주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투지와 의지로 충만한 우리는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산항으로 갔다. 부산항에 도착해 보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선착장에서 짐을 나르고 선원들의 모습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광경인데 우리는 무전여행 중이 아니었던가. 머릿속에 순간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다행히 선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뒷문은 개방되어 있었다. 선원들에게 가서 무전여행의 취지를 설명하며 복도에 서서 가도 좋으니 공짜로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선원들은 잠시 생각하더니 공짜는 어렵고 정상 편도 가격인 4만 원의 절반 가격인 2만 원에 태워주겠다고 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2만 원에 승선하게 되었는데 막상 12시간을 복도에서 가려니 조금 걱정도 되었다. 결국, 걱정은 현실로 일어났다. 멀미약을 붙이고 왔지만, 복도에서 12시간의 항해는 뱃멀미라는 선물을 선사했다. 다행히 복도에 소파 형태의 의자가 있어서 앉아서 갈 수는 있었지만 뱃멀미는 앞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고문과 같은 12시간의 향해 끝에 도착한 제주도는 쨍쨍하다 못해 따가운 햇볕으로 우리를 맡아주었다. 그래도 2만 원에 제주도까지 올 수 있었다는 점에 시작이 좋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칭찬했다.
제주도에서의 이동은 주로 히치하이크를 이용했다. 지금은 렌트비도 저렴하고 범죄의 노출 가능성도 있고 해서 히치하이크를 잘 안 하는 추세이지만 당시에는 히치하이크가 가능했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점은 우리는 무전 여행자들이지 않는가. 제주도 안에서 특별히 목적지를 정하지는 않았다. 히치하이크를 하여 탑승한 차의 목적지가 곧 우리의 목적지였다. 주로 우리를 태워줬던 차는 제주 현지인들의 트럭이나 관광객의 렌터카였다. 그래도 낮에는 히치하이크가 잘 되었는데 밤에는 잘 안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남자 3명을 어두운 밤에 태운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4박 5일간 히치하이크를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그냥 손을 흔들면 차를 세우지 않고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품을 만들어서 춤을 추면서 태워달라는 몸짓을 취하니 태워주는 확률이 올라갔다. 일단 우리의 행위를 보기 위해 차들이 속도를 줄이며 서행하기 시작했고 탑승으로 이어졌다. 이동은 주로 이렇게 해서 교통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문제는 먹는 것과 자는 것이었다. 먹는 것은 식당에 들어가서 취지를 설명하고 공짜로 달라고는 할 수 없으니 2명 가격에 3명 몫을 달라고 제안했다. 요즘 같은 세상이면 경찰 신고감이지만 제주도의 인심은 좋았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2명 가격으로 3명 식사를 해결했다. 그렇다고 매번 식당을 이용한 건 아니고 어쩌다 한번 사치를 부릴 때만 식당을 이용했고 주식은 빵과 라면이었다. 빵과 라면을 먹다가 쓰러질만하면 식당을 찾아서 먹는 식이었다.
첫날밤 숙소는 호텔 테라스를 이용했다. 여름의 제주도는 바람을 동반한 소나기가 자주 내렸다. 지붕이 있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구경하러 간 호텔의 테라스에 둥지를 틀었다. 테라스는 베란다 형식으로 지붕이 있어서 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예상대로 새벽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렸다. 온도도 제법 내려가 추웠지만 가져간 바람막이 외투로 이불을 대신했다. 제주 도착한 첫날이기도 하고 많이 걸었던 터인지라 노숙임에도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우리의 단잠을 깨운 건 비도 바람도 아닌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저녁 늦게 잠입한지라 발견 못 한 우리를 아침이 밝아오자 순찰을 하던 지배인의 눈에 발각된 것이었다. 크게 꾸짖지는 않았지만, 곧 영업을 위한 시간이니 서둘러서 나갈 것을 주문했다. 눈뜨자마자 거의 쫓겨나듯 우리는 롯데호텔을 빠져나왔다. 호텔에서 1박도 했겠다 본격적인 제주 여행을 위해 또다시 히치하이크 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무전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패기가 좋았다기보다 여러모로 우리를 도와주셨던 고마운 분들이 많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번째 날의 숙소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던 민박집이었다. 어김없이 우리의 취지를 설명했고 내용을 들으신 할머니가 하룻밤에 만원이라는 비용으로 숙박을 제공해 주셨다. 너무나 감사했지만, 이불과 베개와 같은 침구류는 주시지 않았다. 그래도 만원에 방 안에서 잘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고단한 몸과 마음을 재충전했다.
우리가 주로 여행한 곳은 관광지가 많았다. 원해서 갔다기보다는 히치하이크로 탔던 차의 목적지가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천지연 폭포를 비롯해 당시 이온음료 광고장소로 유명했던 미로 공원 등이었고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듯 입장료를 받는 곳이 많았다. 무전여행의 취지를 살리는 것도 있었겠지만, 실제 우리에겐 입장권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단체 여행객들이 버스에서 내리면 일행인 척 같이 들어가거나 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경우는 입구가 아닌 곳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나머지 날들의 숙소는
종교시설을 이용했다. 성당과 교회를 찾아가서 신부님과 목사님께 부탁드렸다. 그분들은 흔쾌히 우리를 맞이해 주셨고 안락하고도 편한 잠자리를 받을 수 있었다.
일정 중 가장 큰 문제는 복귀하는 날 생겼다. 제주도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선원들을 매수해 같은 방법으로 돌아가려고 두당 2만 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써버린 상태였다. 제주도 선착장에 도착해서 선원들이 짐을 싣는 곳을 찾았으나 뒷문은 철문의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고 심지어 그 앞에는 제복 입은 두 명의 경비까지 있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제주도가 부산과 같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뒷문으로 들어가지를 못하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냥 매표소로 찾아가 정면 돌파를 하는 방법밖에는….
매표소로 가서 직원에게 우리의 사정과 취지를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육지도 아닌 섬에서 고립되는 기분이었다. 절망과 두려움에 떨면서 매표소의 책임자였던 차장님에게 찾아가서 매달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차장님은 우리의 절박하고도 끈질긴 사정에 2만 원으로 부산으로 보내줄 수는 없지만, 전라도 목포항으로 보내줄 수는 있다는 대안을 주셨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섬만 나갈 수 있다면 육지에서는 돈 없이도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목포항으로 보내졌고 목포에 도착한 다음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아갔다.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회답은 예상 밖이었다. 그곳의 담당자가 말하길 하루에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수십은 찾아온다며 자기들은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했다. 덧붙여서 집에다 연락을 취해 폰뱅킹을 하라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우리가 아녔다. 가방에 남아 있던 동전까지 전부 탈탈 털어내는 오버액션을 하면서 가진 거 전부 줄 테니 우리의 취지를 살려달라고 매달렸다. 1시간가량의 실랑이 끝에 남아 있던 동전까지 지급하고 초등학생 요금으로 부산에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부산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동전까지 전부 다 사용한 상태라 집까지 갈 수 있는 차비가 없었다. 버스 터미널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차비를 빌려서 간신히 집에 복귀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고 고생스러운 여행이었지만 누군가 지금껏 해본 여행 중 생애 최고의 여행을 꼽으라 하면 주저 없이 이때의 무전여행을 말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무전여행은 사진 한 장 없이도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선명히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힘들었거나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삶에 어려움과 힘듦이 찾아올 때면 그 시절 무전여행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도 나는 그것을 추억하며 무모한 도전을 꿈꾸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