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모든 것

by 경험디자이너


군대에 이어 무전여행까지 다녀왔으니 이제 이 거칠 것 없는 청춘에게는 취업만이 남았다.

첫 번째로 들어간 회사는 골프용품 판매회사였다.

골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연봉을 많이 주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선임과 함께 2인 1조로 전국의 컨트리클럽을 돌면서 골프채 대여 행사와 판매를 하는 것이었다. 골프의 골도 모르고 입사를 한지라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선임은 골프채의 각각의 성능은 물론 강도와 각도까지 달달 외우도록 주문했다. 테스트에서 틀릴 때마다 엄청난 꾸지람을 들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전부 암기를 했다.

컨트리클럽에 한 번 들어가면 인근의 모텔 같은 곳에 숙소를 잡아놓고 2주 정도 생활을 한다. 새벽 라운딩 전에 들어가서 오후 라운딩이 마치면 숙소로 퇴근하는 식이다. 숙소에서도 선임과 방을 같이 썼기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일하는 기분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또래보다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외에 크게 배울 것이나 성장 가능한 기회는 포착되지 않았다.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골프채에 관해서는 박사급 정도의 이론으로 무장된 점이라고 할까. 돈만 생각했을 때 일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았지만 돈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었기에 고민 끝에 퇴사를 선택한다.


두 번째 직장은 이벤트 대행 업무를 하는 회사였다. 운전을 하고 싶었던 것이 이 회사의 입사 동기였다.

회사 면접 시 운전은 어느 정도 하느냐는 질문에 남들 하는 만큼 한다고 답했다. 사실 면허를 딴 뒤, 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회사에서는 수동 스틱으로 된 봉고차를 지급했다. 지방 출장이 많기 때문에 출퇴근을 아예 회사 차로 하라는 배려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운전병으로 군대를 제대한 친구를 불러 받은 봉고차로 연수를 받기로 했다. 면허 연습 시 도로주행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하는 정식 도로 주행이었다. 지방 출장이 많다는 말에 바로 고속도로부터 도로주행을 감행했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친구의 입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제발 주행선을 지키고 가라며 주문했다. 운전에 집중한다고 몰랐는데 일 차선에서 왼쪽 벽면에 부딪힐까 봐 오른쪽 차선을 침범해 두 차선을 물고 운전 중이었다. 여름도 아닌 가을의 계절인데도 온몸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흘렀다.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고속도로 운전 연습은 다행히 사고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시내 주행이었다. 차가 많은 시내가 훨씬 어려웠으며 특히 좁은 차선의 골목길 같은 경우는 영혼을 혼비백산하게 했다. 짧고 굵은 연수를 마친 후 실전에 투입되었지만, 신이 도왔는지 작은 교통사고도 나지 않았다

회사에서 주로 담당했던 업무는 LG전자 매장의 프로모션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부산과 경남권의 LG전자 매장을 돌며 매출 증가를 위한 홍보 행사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이었는데 도우미들과의 협업이 많았다. 90% 이상이 외근업무로 지방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많았고 항시 밖에서 일하다 보니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추위가 힘든 요소로 작용했다. 그래도 하고 싶었던 운전을 실컷 할 수 있었고 도우미들과 팀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내겐 장점으로 다가왔다. 이벤트 대행일은 업무의 양과 강도에 비해서 상당히 낮은 급여를 받았다. 일에 대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돈만 보고 일을 했다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을 것이다. 일은 힘들었지만 마케팅과 프로모션에 대해 배우는 것도 있었고 적성에도 맞아서 제법 오랜 기간 근무했다.


2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 내게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20대 젊은 시절동안 3년만 외국에서 살아보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앞으로 긴 세월을 한국에서 살 것인데 젊은 시절이 아니면 해보지 못할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생각과 동시에 실행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외국 생활을 위한 종잣돈과 외국어 능력이 필요했다. 둘 중 하나도 없었던지라 그것을 위해 계획을 세우던 중 현재 직장에서는 준비할 수 없다고 판단해 그것이 가능한 직장으로의 이직을 하게 된다. 이직한 직장은 고등학교 전산실이었다. 이곳은 시간적인 여유가 많았고 근무 시간이 짧고 일정해서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학교의 서버와 컴퓨터를 관리하는 일이었는데 고장 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일하면 되었고 대기 시간에는 개인적인 공부가 가능했다. 외국어 학원 새벽반을 등록해서 출근 전에 공부하고 학교에 와서도 일하면서 공부를 했다. 오후에 학교를 마치고는 집 근처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종잣돈을 모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은 시간까지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 몸은 힘들었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 몸의 노고를 잊게 해 줬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소풍도 가는 날보다 소풍 가기 바로 전날이 더 설레고 잠도 안 온다. 군대 시절 휴가도 막상 휴가 나온 당일보다 기다리는 그 며칠의 시간이 황홀한 정도로 설렌다. 목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목표를 이뤘을 때도 기쁘겠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 더 흐뭇하고 보람차다. 외국어 공부가 단기간에 가능한 것도 아니었고 학교의 작은 월급으로 인해 준비기간이 꽤 오래 걸렸다. 앞서 다녔던 두 곳의 직장보다 일이 편했고 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타성에 빠지는 날도 있었지만 해외 생활이라는 목표를 상기하면서 슬럼프를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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