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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Aug 07. 2020

반도 : 강동원 X이정현

폐허가 된 곳에 남은 유일한 것


코로나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영화들은 여름 시즌을 맞이해 서서히 개봉하기 시작했다. 긴 기다림에 지친 관객들에게도 이제는 볼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영화가 ‘반도’였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천만 관객을 동원했으리라 본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행-부산행의 신화에 잇는 좀비 시리즈 반도를 통해 대한민국 좀비 영화의 대장으로 자리한 듯싶다.

반도에 대한 관심은 개봉 전부터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전작 ‘부산행’은 공유와 정유미, 마동석을 힘입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이렇다 할 좀비 영화가 없었던지라 부산행의 인기는 한국식 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장을 열었고 그 뒤를 이어 새로운 시도의 좀비가 나오기 시작했다.


반도는 부산행에서 좀비가 출현한 4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갑작스럽게 한반도를 휩쓸어버린 좀비로 인해 세계적으로 고립되어버린 그 땅에 남겨진 사람과 좀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 작은 궁금함에서 시작된 영화가 ‘반도’이다. 영화에 나온 주요 배우와 캐릭터를 통해 영화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모두 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니 여러 사람의 의견과 다를 수 있다.


배우 강동원



부산행에 ‘공유’가 딸을 살려야 하는 아빠의 역할로 나와 좀비를 이겨내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줬다면, 반도에선 누나와 조카를 잃고 홍콩으로 넘어가 홀로 살아가고 있는 ‘강동원’이 있다. 소중한 이들을 잃고 고국을 떠나 마음 둘 곳 없는 떠돌이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는 커다란 미련도 욕심도 없다. 그러던 그에게 들어온 제안. 버려진 땅 ‘반도’에 들어가 달러가 가득 담긴 트럭을 가지고 오라는 것. 절반의 몫을 떼어준다는 제안에 그는 스스로 떠났던 땅 반도로 다시 향한다.


영화에 나오는 강동원을 보며 내내 든 생각은 역시나 ‘와, 잘생겼다’였다. 그는 이미 본판이 잘생긴 배우라서 연기까지 잘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가 아직은 어색하다. 그가 가진 캐릭터의 날카롭고 강한 힘이 잘 표현되지 않는 느낌이다. 오히려 약간 푼수 같거나, 모자란 모습을 어필할 때 더 잘 먹힌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 라던가, ‘검은 사제들’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미성숙한 표현을 더 편하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반도의 연기도 잔뜩 힘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배우 김민재

강동원이 약하게 보였던 것은 그를 둘러싼 다른 캐릭터들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김민재’였다. 그는 좀비로부터 시민들을 구해내던 군인이었다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땅에서 짐승처럼 혹은 괴물처럼 변해버린 황 중사 역할을 맡았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땅에서 남은 희망도, 목적도, 이유도 없기에 당장의 즐거움을 쫓아 사는 캐릭터다. 좀비를 피해 살아난 생존자를 ‘들개’로 부르며 잔혹한 싸움판에 던져버리는 모습은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완전히 잃어버린 모습이다.


배우 구교환

황 중사의 캐릭터가 너무 강렬해서 그를 뛰어넘을 다른 캐릭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웬걸. 어디서 갑자기 이런 배우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캐릭터가 하나 나오는데, 바로 배우 ‘구교환’이다. 그는 그 중대를 이끄는 서 대위로 나오는데 사회적 위치로는 굽힐 필요가 없는 상태지만 더 이상의 즐거움을 찾지 못해서 말 그대로 마지못해 살아가는 역할이다. 그러다 강동원을 만나 트럭을 빼내는, 반도 탈출의 소식을 접하게 되고 마지막 희망의 끈을 끈질기게 붙잡고 가는 인물이다.


처음에 서대위라는 역할의 비중에 비해 너무 인지도가 없는 배우가 캐스팅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에 적합할 새로운 배우의 얼굴들도 여럿 떠올랐다. 그가 과연 이 역할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나 의문이 들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났을 때 남는 것은 ‘구교환’ 하나였다. 그의 연기는 조급함이 없다. 원래 여유가 넘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묵직한 힘이 있는데, 그의 연기가 그렇다. 그는 작게 말해도 크게 들리게 하는 매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맡았기 때문에 그 역할이 빛나게 되었다. 실로 놀라운 배우다. 앞으로 훨씬 더 성장하고 주목을 받게 될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배우 이정현

마지막으로 짚고 가야 할 배우는 ‘이정현’이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처절하고 악에 바친 연기를 잘하는 사람인지 안다. 그래서 반도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 같다 라는 어렴풋한 짐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짐작이 딱 맞아떨어졌는데, 그게 지루하거나 뻔하지 않았던 것은 그 연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정현이 캐스팅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녀는 작지만 강하고, 약하지만 이길 수밖에 없는 엄마의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좀비 소굴에서 어린 딸들을 키워내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강해야 하는가.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살벌하고 힘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영화 반도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하자면, 좀비는 진화했지만 그와 함께 지내는 사람은 더욱 진화했다. 선하게든, 악하게든. 처절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끝을 보이게 되는데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남자들은 힘을 과시하고, 약한 이를 괴롭히고, 강한 힘의 논리 안에서 살아간다. 여자는 가족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를 살려내고, 생명을 이어가는 역할을 해낸다. 영화가 다 끝나고 돌아보면 남는 것은 사람과 사람, 남자와 여자의 차이로 느껴질 지경이다. 좀비 소굴에서 좀비는 사라졌고 좀비보다 징그럽고 잔혹한 인간만 남았다. 어쩌면 그것이 좀비보다 무서운 현실일지 모르겠다. 정말 두려운 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않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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