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의 나를 헤아려보기
기대하고 있던 영화가 호평을 받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다. 그리고 기대가 높은 영화는 늘 나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소울 역시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영화 그대로를 봐도 일말의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픽사 다운 새로운 주제의 선택과 시도는 너무 좋았다. ‘인사이트 아웃’을 통해 인간의 감정에 대한 근본을 파헤치는 과감한 도전을 했고 이번에 ‘소울’에서는 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의 상태에 대한 호기심에 불을 당기는 영화였다. 모든 인간이 각각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자신의 삶을 완성하게 하는 ‘불꽃’을 하나씩 품고 있다는 것. 자신의 불꽃이 재즈 연주라고 생각했던 ‘조’의 죽음과 태어나길 거부하는 ‘22’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영화 곳곳에서 새로운 시도와 흥미로운 연출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태어나기 전의 상태를 설득시키기 위한 장치가 꽤 많았는데 그럴싸하게 잘 엮었다. 내가 신앙이 없었다면 사후의 모습은 ‘코코’로, 전생의 모습은 ‘소울’로 기억하고 싶을 것 같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러나 개연성에 너무 힘을 준 탓인지 결과적으로 뭘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약하다. 목적을 가진 삶 그것만이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가치있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많은 어른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팬트하우스, 스카이캐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치열함과 성공에 대한 집념을 생각해보자면 ‘소울’의 위로 정도로는 택도 없다. 이정도는 눈물 찔끔 하려다 말게 된다. 영화의 메시지는 참 좋은데, 받아들일 나의 마음 상태가 아직 많이 척박한가보다. 인생의 힘겨움을 어떤 예쁜 아이가 토닥토닥 위로하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고맙고 애틋한데 그저 그 뿐이다. 이미 나는 어른 동화도 먹히지 않는 어른이 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