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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Jan 25. 2023

정리할 때 필요한 것

어떤 것도 정리하지 말기 



아빠는 설날 가족 예배를 드리며, 이렇게 기도하셨다.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2003년을 시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눈을 꽉 감고 한껏 이목구비를 중앙으로 꾸기며 홀로 웃음을 참았는데, 아빠의 기도로 웃음이 터진 동생은 실눈을 뜨고 분위기를 살피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칵"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나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핫" 웃음이 터져버렸고 둘 다 엇박자로 번갈아가며 참았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는 통에 기도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원래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터지는 웃음만큼 참기 힘든 것도 없다. 그건 거의 변비약을 먹고 갑작스럽게 오는 신호처럼, 막으려 할수록 강력하게 찾아오고 참으려 할수록 거칠게 밀고 나오는 일이라 우린 나름대로 애썼지만 결과는 맘처럼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올해의 복선일까. 작은 실수가 발생해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바탕 재밌는 이야기가 되고 마는 2023년이 될 것이란 뜻일까? 오늘의 시간을 잘 남겨두면, 12월쯤에는 확인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잘 기록해 둬야지.


한동안 미뤄뒀던 브런치를 보다가 올해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다짐을 하고 나니,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지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원래 공부하려고 앉으면 책장에 잘못 꽂힌 책들의 들쑥날쑥한 높이가, 눈앞의 포스트잇들의 정리되지 않은 메모들이, 책상에 붙어있는 스티커가 거슬려서 떼느라 온 힘을 온갖 곳에 쓰지 않던가. 나는 브런치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시 한번 싹 밀어내고 재구성을 해서 거기에 맞춰서 글을 써야지. 


그러다 문득, 

아 이러다가 또 시작이 날아가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은 이렇게 벼락처럼 찾아와 내 마음에 내리 꽂히고 정신을 바짝 들게 만들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은 건데,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하느라 에너지를 분산할 여유가 없었다. 괜히 다른데 힘 쏟으면 보나 마나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놓쳐버리거나 다음에 하자고 미루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내버려 두자. 

정리를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는 것. 

그 상태 그대로 시작할 것. 


정리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먹은 것을 시작하는 것일테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크게 두 걸음을 내딛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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