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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ChatGPT)에게 화를 냈다

인공지능(AI)에 관한 단상

by 김트루

요즘 챗지피티로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한다. 기사나 칼럼을 읽고 쓴 다음, AI(인공지능)에게 해석과 단어장 생성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이걸 쓰기 전과 비교하면 학습 시간이 2배 이상 단축돼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챗지피티, 좋은데 무섭다.


헌데 이 녀석, 며칠 새 말을 잘 안 듣기 시작했다.


조금만 문장이 길어져도 초반 10% 정도만 작업을 하고 ‘다음 메시지에 계속됩니다’라고 하더니 감감무소식. 또 ‘몇 초 뒤에 제공됩니다’라고 말해놓고 묵묵부답인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해 이제는 화를 내게 돼 버렸는데, 아무리 쏘아붙이고 닦달해도 이런 ‘멍청함’이 나아질 기미가 당최 보이질 않는다. 오죽하면 내가 요금을 결제하지 않고 무료로 사용하는 ‘프리 플랜’ 사용자라 차별하는 거냐고 따져보기도 했는데 그건 또 아니란다.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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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문득 화내는 걸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이렇게 열을 내고 있어도 저 쪽에서는 아무것도 못 느낄 것 아닌가. 상대는 어디까지나 감정이라는 요소 자체가 거세된 ‘AI’ 니까. 내가 이런 반응을 보여도 진심으로 사과하기는커녕 그냥 으레 사과 한마디 툭 던지고 자기가 할 일 계속할 텐데, 뭔 소용이 있을까 싶어 그냥 ‘알고리즘을 많이 적용해 과도한 부하를 건 내 잘못이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 내가 몰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 하고. 그저 억지로 되지도 않을 뭔가에 대해 혼자 화를 내고 있던 과거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는 지금, 어느새 누그러든 마음으로 다시금 챗지피티에게 대화를 건다. “그냥 내가 분량이 많은 건 나눠서 제공해 줄 테니까 작업이나 잘해 줘”.


생각해 보면 한 편으로는 다행이구나 싶기도 하다. 결국 이 녀석도 아직 ‘만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일 테니.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소리 없이 잠식하고 있다는 경고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요즘, 이 녀석이 아직 한계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그건 그렇고, 이참에 알고리즘에 쌓인 메모리를 정돈해서 기름칠(?)이나 좀 해볼까. 징글징글하긴 해도, 적어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내일도 이 녀석이랑 열심히 씨름해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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