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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Nov 14. 2018

24. 편의점 알바 김씨의 '병가'

이런 일도 다 있네 싶습니다.


월, 화 2틀 간 급체로 병가를 내고 쉬었다.


알바 녀석이 병가라니 참 말이 거창하다만, 여하튼 그랬다. 월요일에 출근을 하기 전부터 컨디션이 평소와 같지 않음을 감지했지만 그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 못한 채 일을 시작했더랬다.


근데 한 시간을 채 못넘기고 속이 부대끼는 것을 참을 수 없어 결국 화장실로. 아래 위로 한 차례씩 쏟아내고 나서 카운터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중 도착하신 배송기사 아저씨, 그리고 그 날 따라 산더미 같은 아이스크림과 유제품 박스들.





아.... 내 묫자리가 여기로구나...





당장이라도 점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퇴근을 하고 싶었지만 눈 앞에서 자기를 차곡차곡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달라 아우성치고 있는 저 아이스크림 박스들, 유제품 친구들이 도저히 눈에 거슬려 그냥 갈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저 것들만 끝내보자'



하며 억지로 몸을 일으켜 냉장고와 카운터를 오가며 정리와 손님 응대를, 마치 영화에 나오는 좀비, 그러니까 반 송장처럼 어기적거리며 했다. (모자를 푹 눌러써서 내 표정이 손님들에게 바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다.)


겨우 물건을 정리하고 나니 8시 반 정도. 근데 이제 또 눈에 밟히는 것들이 속속 보인다. 비어있는 술 냉장고, 더러운 실내 테이블, 비어있는 담배칸 등등...


여기서 몹쓸 자존심이라는 녀석이 속삭인다




야...

니가 여기서 일 한지가 얼만데 이걸 남겨놓고 그냥 집으로 가려고 하냐...?






아... 망했군....



한 번 이 목소리가 들린 이상 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직감, 퇴근을 또 미룬다.

최대한 부랴부랴 정리를 마치고 9시 반에 전화기를 들어 기어가는 목소리로 점장님께 구조요청을 한다. 다행히 대타를 보내주셨고, 결국 9시 50분에 퇴근해 집으로 왔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있다가 뒤늦게 찾아온 몸살기운으로 인한 근육통과 더부룩함에 잠들지 못해 뒤척이길 반복하다 잠들고, 다음 날에도 그저 누워서 자고, 쉬고, 자고를 반복하고 나니 오늘 겨우 사람 꼴을 갖춰 다시 일을 하러 갈 수 있게는 된 것 같다(학교에서 먹은 점심이 또 얹히기는 한 것 같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몇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정신적으로 힘든 건 참으면 되지만, 신체적인 어려움(병 등)은 참으면 안 된다.

식사 후 지각하지 않겠답시고 급하게 뛰지 말고 차라리 지각을 해라. 그러다 체하면 나처럼 된다.

정신적으로 힘들 땐 휴식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적당히 쉬자.

휴식하는 데에는 큰 돈이 들어간다. 아이고 아까운 내 시급...

결론은 아프면 내 손해다. 그저 내 손해니 절대로 아프지 말자. 여러분도 절대 아프지 마시고 올해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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