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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나쁘기만 한 걸까?

66일 동안 매일 읽고 매일 글쓰기 28일 차

by 버츄리샘

가난했고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님 밑에서

예체능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어려우셨지만 수학 학원에 가고 싶다고

엄마를 끌고 학원에 갔던 나를 내치지 못하시고

등록해 주셨다. 그러나 악기나 미술까지는 염치없는 일이었다.


내가 지원한 교대는 편입시험 2차에 피아노 실기가 있었다. 오른손으로만 치는 수준이 낮은 정도였지만 피아노를 못 치는 내게는 험난한 산과 같았다. 한 번은 1차를 잘 보고도 2차 피아노와 미술 실기(데생)를 망쳐 2차에서 불합격을 하여, 다음 해는 1년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피아노 시험 때는 우황첨심환을 하나 먹고 들어가 보았을 정도로 피아노는 거대한 성벽이었다. 다행히도 그 해는 더 쉬운 난이도의 악보여서 무난히 칠 수 있었다. 미레~도미솔도 솔미도 시~도라솔파~미레도. 20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기억이 날 정도니 얼마나 부담이 컸는지 이해가 가는가?


피아노에 한이 맺힌 엄마는

아이들에게는 최소 악기하나는 꼭 가르쳐주고 싶었다. 엄마 옛날이야기를 하니 아이들은 배울 수 있다는 게 감사한 인 것을 깨달은 마냥 피아노 학원을 즐겁게 다녔다.

귀국 후 초5, 초3부터 배운 터라 늦은 편이지만

이제는 그만할까? 하는 나의 질문에

절대 안 된다고 꼭 다니겠다는 아들들이다.

피아노를 즐기는 아들들

그렇다고 재능이 있어 전공을 할 정도도 아니고

콩쿠르에 나가본 적도 없다.

그냥 즐겁게 다닌다. 피아노 치는 일 자체가 행복한 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큰 아이는 칠레에서 배운 클래식 기타에 이어

요즘은 일렉 기타도 배우고 교회에서 드럼도 배우고 있다. 이 녀석에게 주어지는 기회들이

엄마지만 부럽다. 다들 공부하기 바쁜 예비 중딩시기일지 모르겠지만 베짱이처럼 악기를 둥당되는 아들의 모습이 이쁘기만 하다.

반전은 악기 중 쉬운 리코더를 늦게 접근해서 인지 못 하겠다는 아들이다.

좀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담임선생님은 흔쾌히 리코터 합주에 아들에게 기타를 맡게 하셨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악기로 합주를 하게 해 주신 담임선생님께 정말 감사했다.


가끔 아이들에게 엄마의 결핍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너희에게는 엄마의 결핍들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적어도 배움에 있어서는 더욱 말이다. 단 옷이나 가방 등 소모품에는 결핍까지는 아니어도 풍족한 것을 경계한다.

배우는 것에 있어서는 결핍을 없게 하고 싶지만

소모품들에 대해서는 조금 부족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오히려 결핍이 없어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당연하다고 느껴지면 감사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엄마의 과거의 결핍들은 아이들에게 본인이 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너무 싸우셔서 늘 불안했어. 그래서 엄마는 너희 앞에서 아빠랑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해. 물론

크게 싸울 일도 없었지만."

또 하나의 엄마의 결핍은 아이들에게 불안이 아닌 안정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과거 나의 결핍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그 결핍은 현재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되었다. 그래서 감사하다. 나의 결핍으로만 끝날 수 있어서.


두 아들들이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집안에서는 서로 도와야 가정이 지탱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가정의 살림들을 같이 해나간다.

단, 다양한 세상을 배우는 일과 심리적 안정감에 있어서는 결핍이 아닌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고 싶다.


세상을 더 넓게 배워나가며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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