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일 동안 매일 읽고 글쓰기 5일 차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만큼 외롭고 괴로운 일은 또 없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 도사리는 삶이란 얼마나 긴장의 연속이겠는가. 그럼에도 그 초조함과 긴장됨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덤하게 맞서는 연습은 필요하다. 최대한 어릴 때 부끄러운 순간을 자우 조우하고, 깨지고 부서지는 경험이 많아야 훗날 나이가 들어 그럴 일은 피할 수 있다. 그러면 위기 앞에서도 여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행동력 수업 중에서 ㅣ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담임선생님은 동요를 많이 가르쳐 주셨고, 우리는 선생님의 풍금에 맞춰 매일 노래를 불렀다. 그때 불렀던 동요들은 아직도 가사하나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고, 부르며 들었던 서정적인 느낌도 오롯이 기억이 난다.
반에서 특히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도로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 인기였던 이금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던 '어린이 동요대회'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본선 진출한 친구들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는 버스를 대절하고 응원도구를 만들어 방송국에 갔었다. 한 3번 정도 갔었는데 그때 내심 내 마음에는
'나도 친구들처럼 무대에서 노래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선생님께도, 부모님께도 나가고 싶다고 말은 못 했지만.
어느 날 그 마음이 커지다 못해
친구랑 같이 동요대회 예선이 있던 날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있는 KBS로 향했다.
많은 어린이들이 예선을 보기 위해 방송국에 모여들었고, 간단한 신청서를 내고 심사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다.
얼마나 떨리던지 두 손을 깍지 끼고 배꼽 위치쯤에 놓고 전주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려던 찰나.
'어 어디서 들어가야 하지?'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 왜 안 불러? , 한 번 더 기회를 줄 테니 잘 들어가" 심사위원의 말이 들렸다.
"네" 기어가는 소리로 주눅이 든 체 대답하고 다시 심호흡을 해본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또다시 '어, 어디서 들어가야 하지? 모르겠다.ㅜㅜ'
못 들어가고 말았다.
"야~ 노래를 불러야지. 다음 사람."
노래도 불러보지 못한 채 예선에서 탈락했다.
너무 아쉬운 마음에 친구랑 또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2번째 도전에는 어린이들이 더 많이 모였다.
예선 지원자가 너무 많아 이번에는 앉은자리에서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다.
노래는 기억이 나질 않았지만 이번에는 반주가 없기에 씩씩하게 불렀다.
그러나 결과는 또 탈락이다.
지금이야 그런 큰 대회 본선까지 가려면
선생님이나 외부의 강사의 도움과, 많은 연습이 필요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때 고작 11살인 여자아이는
'하고 싶다'라는 마음만 가지고 2번씩이나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것이다.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인 성격에 어떻게 그런 도전을 했을까 싶은데 '하고 싶은 마음'이 성격을 극복할 정도로 컸었던 이유겠다 싶다.
실패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지만 도전해 본 그 경험들은 내 삶에 씨앗이 되어 도전하고 실패하는 삶을 두려워만 하지는 않게 되었다.
20대에도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었는지
그 시절에 실패를 통해 얻은 성숙함과 인생에 대한 통찰력은 지금도 나의 큰 자산이다.
그리고 그 실패들은 결국 내가 바라고 바라던 그 꿈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나는 지금쯤 후회 속에 살지 않았을까?
그때는 '실패는 불행'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실패 후에는 낙심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수 있는 도전을 선택했기에 또 실패를 겪었어도 후회는 남지 않았다.
그리고 연속된 실패 속에 결국은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되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어린이 동요대회에서는 예선탈락했지만 지금 40대인 나이에도 교회 예배시간에 찬양팀으로 매주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찬양을 한다. 공간은 다르지만 무대에서 마이크 잡는 행위는
같으니 그때의 실패도 다 의미 있지 않은가?
40대에 나는 또 다른 실패에 도전한다.
글쓰기의 길에 들어서서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할까?
'그래도 괜찮다.
그 실패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