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 미묘한 쓰기의 세계
쓰는 나와 쓰지 않는 나 사이의 불협화음
세 명의 남자가 집을 나서고, 텅 빈 거실에 홀로 남게 되면 늘 하는 고민이 있다.
'나갈까 - 말까, 쓸까 – 쓰지 말까, 읽을까 – 읽지 말까, 먹을까 – 먹지 말까.'
수없이 하는 고민이지만, 결과는 늘 비슷하다. 나가야 다음 일이 벌어진다는 것. 쓰고, 읽고, 먹고,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해야 하루를 잘 보낸 기분이 든다. 하지만 쓰고 읽고 먹는 일도 이유 없이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땐 한 달에 한 번, 사나흘 정도 나에게 자비를 베푼다. 유느님 말로 자빠져 있는 상태가 된다. 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찬밥을 한 숟갈 물고 소파와 침대를 오가는 상태. 하지만 그 기간이 유독 길어질 때가 있다. 흔히 말하는 슬럼프다.
자비인지 방치인지 포기인지 모르게 마음과 몸이 따로 놀면,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구렁텅이에 빠져들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말이 있다.
‘쓴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어?’
이 한 문장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으면, 손끝이 얼어붙고 뇌가 굳는다. 기약 없는 미래를 향한 무모함이 들끓었던 마음을 차갑게 식혀버린다. 무엇이든 쓸 수 있겠다 싶던 적이 언제였는지, 있기는 했는지 의심한다. 세 시간 동안 세 줄도 쓰지 못할 땐 쓰지 않고 멀쩡히 지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정말이다.
중력을 거스르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심정으로 안간힘을 쓴다. 쓰는 나와 쓰지 않는 나 사이의 불협화음 속에 쓰는 나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먹이고 입히고 치우고, 그리고 쓰는 거라고. 기계처럼 움직이는 몸에 맞춰 마음을 움직이는 게 최대의 평화라고 단정한다. 해야 할 일로 채워지는 게 삶이라며 나를 돌아 세운다. 있는 그대로 만족할 만한 지점은 신기루 같은 거라고. 안정과 성취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망한 거라고.
어쩌다 조용히 숨 쉬는 기억을 건드려 나가기 시작할 땐, 희열이 터지기도 한다. 세 시간 동안 세 줄도 못 쓰고 있다가도 불현듯 떠오른 그때의 장면과 말이 깜박이는 커서에 힘을 실어 준다. 커서가 춤추듯 글을 잇고, 문장을 만들어 내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아, 내가 이런 글을 쓰려고 했었지.’라며 역시 쓰기를 잘했다고. 이제 누가 ‘작가’라 불러줘도 숨지 않을 수 있겠다며 자신한다.
아주 그냥, ‘변덕이 죽을 끓는다.’
그렇다. 한 달에 수십 번,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끓이는지 모르겠다. 이제 그만 지겨울 만도 한데.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펼치고 폴더 속 한글 파일을 깨우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발행까지는 한 달?)
앞에서 말한 나갈까 – 말까, 1단계 관문에서 후자를 택한 덕분이다.
‘넌 아침 먹기 전에 리모컨을 찾아선 안 돼, 그러면 그 자리에서 3시간을 허비할 테고 곧 점심 먹을 핑계를 대며 나가는 걸 어느새 포기하게 될 거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면 제어도 가능하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자신을 제대로 아는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고. 그렇다면 스스로를 이렇게나 잘 아는 난, 리모컨을 의도적으로 찾지 않던지, 아니면 집었더라도 다시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하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쉽게 타협해 버린다. 그것도 매우 자주.
변덕을 부리고 쉽게 타협하는 내적 충동을 언제쯤이면 가뿐히 무시할 수 있을까? 스스로 통제 가능한 범위를 넓히면 가능할까? 그러고 보니 나를 송두리째 묶어두는 가라앉는 마음은 재능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문학소녀도 타고난 글쟁이도 아닌 내가 감히 ‘글’을 쓰겠다며 분수도 모르고 설쳐대던 때. 인정욕구에 목마른 외로움 많이 타는 아줌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가 글로 먹고살고 싶다고 말한 건, 나와 내 글을 좋아하고 응원한다는 몇 명 때문이었다.
인사치레로 한 형식적인 말에 이렇게도 과한 의미부여를 하는 게 오버스럽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진실인 것을. 지독한 외로움 덕분에 글을 썼고, 쓰기 위해 다시 지독한 외로움을 택했다. 아는 맛이 무섭기에 아는 맛을 찾으러 난 쓰고 또 쓴다.
어쨌거나 똥이 될지도 모르는 초고에 매달리는 힘은, 써봤자 별거 없을 거란 생각을 가드를 올리고 때려눕힐 때 생긴다.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겨보려 한다. 남보다 잘난 내가 되기 위한 욕심을 내려두고, 일단 책상 위 노트북을 펼치고 볼 것이다. 기필코 난, 나를 제어해 버리는 자유로움에 중독되고 말 것이다.
‘나가게-쓰시게-쓰다 막히면 읽으시게-그리고 배를 채우시게!’
ps. 혼자라서 좋다고 했다 혼자 글 쓰는 건 고통이라 떠들어대는 변덕쟁이 아줌마의 하소연을 들어주신 여러분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