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과 더 가까워지는 곳

욕심을 부리고 싶은 날

by 아는이모

일주일에 두 번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늘 앉는 창가 자리 벽면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자리에 앉을 때마다 저절로 눈이 가 몇 번을 읽었다.


< 당신 꿈에 더 가까이 - 나를 찾는 진정한 여행에서 가장 필요한 친구는 ‘책’입니다. >


경비도 짐도 필요 없는 여행을 허락하는 곳. 무엇보다 네 꿈이 먼저라 말해주는 이곳에 가방을 내려놓고 서가 앞에 선다.


주로 800번으로 시작하는 책장에서 기웃거린다. 책 기둥 위 빼곡히 적힌 제목을 훑어본다. 좁다란 통로 사이로 몸을 굽힐 때, 이 공간을 접수하는 듯한 안정감은 그 옛날의 기억을 불러온다. 돌돌 말린 이불 사이에 쏙 들어가 입만 벌리면 먹을 걸 넣어주던 때. 한없이 받아먹기만 해도 칭찬받던 시절. 기억이 아닌 추측에 가까운 추억.


먹이고 치우는 세계에서 빠져나와 눈을 반짝이며 아이처럼 쪼그려 앉게 만드는 곳. 제목만 읽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책을 발견하며, 감히 넘보지 못할 세상을 넘본다. 나를 다시 꿈꾸게 만드는 희망은 책 내음을 맡으며 싹텄다.


‘꿈꾸는 사람이 유독 많이 보이는 곳.’


한글을 겨우 뗀 아이가 그림책을 꺼내 오고, 축구를 하던 아이가 땀을 닦으며 만화책을 집어든다. 나와 비슷해 보이는 여성들은 육아, 요리, 에세이 등의 책을 펼쳐 아이와 가족을 위한 배움을 놓지 않는다. 남편과 비슷한 중년들은 약속이라 한 듯 재테크 책을 펼친다. 치열한 자본주의 세상에 던져진 가장들은 책으로나마 완전 정복을 꿈꾼다. 건물주가 되고 100억 자산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꿈을.





굽은 등을 한 채 몇 시간을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의 세계에 빠진 어르신을 보면 수시로 울컥한다.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작은 글자를 모서리가 돌돌 말린 수첩에 한 글자, 두 글자 옮겨 쓰는 광경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혹여 놓치는 글자가 있을까 몇 번이고 확인하는 모습이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너의 여생은 어떠한 삶의 방식과 태도로 채울 건지 묻는다. 무엇하나 거저 얻는 게 없는 세상의 진리를 그새 잊은 건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끌어당기는 책 한 권을 뽑아 자리로 돌아간다. 한 사람의 집요한 생각과 감정이 담긴 정갈한 문장을 발견하면 놓칠세라 수첩에 옮겨 적는다. 건너편 할아버지처럼 모서리가 돌돌 말린 수첩에 몇 줄을 옮겨 적고 몇 번을 곱씹으며 생각에 빠진다.


단 한 줄의 문장도 버릴 것이 없는 책을 발견할 때는 보물 찾기에서 1등 쪽지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기쁘다가도 질투가 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한다. 문장 탄생의 배경을. 좁고 얕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작가의 경험과 사유의 폭을. 이런 글을 쓸 날이 내게도 올 지를.


부러움 섞인 존경은 쓰고 싶게 하는 마음과 쓸 수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을 동시에 들쑤신다.


들썩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아들이 다가와 말한다. ‘엄마, 이 책 재밌어, 읽어봐.’하고 건네받은 책에서 색다른 단어를 발견했다.



공.헌.자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지구 끝의 온실, 이초엽>


문득 생각했다. 남들을 짓밟았던 사람들 덕분에 내가 살아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나마저 유해 한 존재로 지구상에 머물러도 될까를. 이제껏 두 생명을 낳아 기르는 건 말고는 지구상에 특별한 공헌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공헌은 무엇일까를.


자주 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를테면, 분리수거, 일회용품 덜 쓰기, 다정한 어른이 되기. 그리고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결론을 내는 지루함에 지치지 않기. 더 나은 세상이 오리란 희망을 잃지 말기, 그리고 자신에게 조금 여유로워지기.

온갖 귀찮음을 뿌리치고 책 속 탐험을 즐기는 이들 덕분에,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의 수고는 계속될 것이다. 도서관을 메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책을 통해 연결된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한 칸씩 넓어지는 마음을 느낀다.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숨죽여 글을 읽는 곳.


그곳은 유독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을 환대한다. 이곳에서 마음을 내려두고, 숨을 돌리며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하라 말한다. 당신도 우리도 책을 딛고 나아가 이 세계의 공헌자가 될 수 있다고. 누구든 희망을 품고 꿈이란 걸 꿔봐도 된다고.


성공한 인생은 한정판 일지 몰라도 하루를 잘 보내는 건 욕심내도 되는 일이니까.


오늘 만큼은 책에 파묻혀 잘 보내 보라고 한다.


한껏 욕심을 부리고 싶은 날에는 도서관으로 간다.


내 꿈과 한 발짝 가까워지기 위해.

또 다른 미래를 욕심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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