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보다 동네 책방

간결함에서 오는 안정감과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움

by 아는이모

'서점이나 가볼까?'


딱히 일정이 없는 주말, 대형 서점에 들르면 한가로움을 도둑맞는다. 분야별로 틈 없이 쌓인 책에 질색하다가도, 요란한 홍보 매대 지나칠 때 들리는 소리 없는 애원에 발목을 잡힌다. 출판사의 사활이 걸린 띠지와 제목을 보며 여기까지 오는 데 들었을 무수한 수고를 생각한다. 그런 짠한 마음이 ‘구매’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대체로 그렇지는 않다.


‘미안합니다. 좋은 책이지만 제 취향은 아니어서요.’


라며 책을 내려둔다.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발걸음을 빨라진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층별로 휘휘 둘러본 후 쫓기듯 서둘러 나온다.


얼마 전 <The Scent of PAGE>라 적힌 룸 스프레이를 선물로 받았다. ‘종이의 향’이라니, 우드계열의 싱그럽고 묵직한 향이겠거니 하고 투명한 유리병 속 액을 분사했다. 곧 익숙한 향이 온 방에 퍼졌다.


‘이건 교*문고 향이잖아?’


반가운 마음에 서재라 하기엔 민망한 골방에 들어가 룸 스프레이를 아끼지 않고 뿌렸다. 그리곤 뭐에 홀린 듯 노트북을 펼쳐 교*문고 사이트에 들어갔다. 베스트셀러와 영역별 신간을 두루 확인하며 보기 좋게 꾸며둔 출판사 서평과 목차, 카드뉴스를 훑어보았다.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걸린 철봉과 쓰지 않는 워킹패드, 그리고 철 지난 장난감이 난무하는 골방 안 책상에서 한 시간 남짓을 보냈다. 여긴 서점이란 착각을 하며.




그제야 알았다. 들어가기 무섭게 나오기 바쁜 그곳을 한 달에 두세 번 굳이 챙겨서 갔던 이유를. 서점에 들어설 때 특유의 향 때문이었다. 입장과 동시 나를 맞이하는 강렬한 향. 입장 후 단 몇 분 동안만 유지되는 그날 치 설렘. 하지만 향이 날아가 버리면 책을 찾아 읽고 싶다는 의욕도 함께 휘발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때론 무색무취한 작은 공간이 그립다. 대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을 느끼며, 광고와 인파에 휩쓸려 꺼내 든 책 말고, 믿고 먹어도 된다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주인장 추천 메뉴와 같은 책을 골라 찬찬히 음미하고 싶다.


새로운 여행지를 갈 때마다 동네서점이나 북 카페를 코스에 넣는 이유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다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한다. 교*문고의 시그니쳐 향이 없이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곳. 하나하나 작품처럼 놓여 있는 책을 볼 때면, 글쓴이와 엮은이들이 비로소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것 같아 흐뭇하다.


각기 다른 선반에 올려져 있는 책이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마음 놓고 책을 펼쳐도 된다고. 책 기둥에 적힌 글자체와 제목의 연관성을 가늠하며 혼자만의 상상에 취한다. ‘주인장 픽’이라고 포스트잇이 붙은 책은 과감하게 펼쳐 목차부터 읽는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추천했을지, 이 공간과는 어떤 의미일지 남모르게 추측하며 한 땀 한 땀 새겨 읽는다.


우연히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해둔 메모를 발견할 때면, 내적 친밀감이 극도로 더해진다. 욕심내 몇 권을 골라 읽다 미처 다 읽지 못하면, 사야 할 책과 빌려 읽을 책의 리스트를 수첩에 적어둔다. 그리고 마음껏 설레한다. 언제 읽지? 어디서 읽지? 어떤 커피와 어울릴까? 어떤 날씨에 잘 읽힐까? 그런 상상을 하며 몇 달 치 설렘을 한꺼번에 예약한다.

헐렁한 간격이 주는 편안함, 특유의 고즈넉함을 본능적으로 찾는다. 시끌벅적한 핫플 보다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이 있는 카페, 거창한 전망 대신 대화에 몰입할 수 있는 조명과 따뜻한 음악이 흐르는 곳을 찾는다. 뷔페가 부담스러워 진지도 꽤 됐다. 휘낭시에 한 조각과 곁들여 마시는 고소한 라테 한잔이 비용대비 큰 만족을 가져다 준지도.

형식적으로 부피만 커지는 관계가 부담스러우면, 그에 따른 무리한 책임감과 죄책감도 버거워지기 마련이다. 사람도 음식도 책도 간결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강요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준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방해만 허용하며 살고 싶다. 이는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 이기적인 일은 아니다.


나를 위한 일은 결코 나만은 위한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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