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온 말, 내뱉고 싶은 말

카페를 혼자 찾는 이유

by 아는이모

왕복만 보를 찍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카페를 찾아다닌다. 일부러 애써 걷는다. 걷는 동안 무엇이라도 떠오르길 바라면서. 주로 발길이 닿는 곳은 도서관 주변이나, 대학가 주변이다. 근처 카페에서 혼자 서너 시간을 보낸다. 매일 다른 곳에서 매일 비슷한 종류의 글을 쓰고 지운다. 혼자 새로운 카페를 찾는 이유는 낯선 장소가 주는 영감과 설렘도 있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틈에 끼여 그들의 대화를 은밀히 엿들을 수 있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옆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엄마들이 모여 입시 전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목소리 큰 엄마가 그 집 아침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공부를 안 하면 몸으로 때우는 일이나 하고 살아야 하는데, 너 정신 안 차릴 거야!”


오늘도 같은 레퍼토리의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며 애환을 털어놓는다. 이분법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복잡다단한 세상.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 은연중에 신체노동의 가치를 무시하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류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더없이 시리다.


경제적 자유가 있는 상황에서 본인에 선택에 따라 하는 노동을 흔히 운동 삼아하는 일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유 없이 생계를 위한 일이 될 때, 노동이란 신성한 단어 앞에 ‘막’과 ‘중’이란 단어를 붙여 경계를 만든다.


생명을 담보로 일하는 이들에게 운동 삼아 또는 경험 삼아하는 일이 가당하기나 할까. ‘운동’ 삼아 일한다는 말을 조심해야겠구나. 철없이 함부로 말했던 나를 급히 반성하며 시선을 돌렸다.


다른 한쪽 테이블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싱그럽고 풋풋한 청춘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쫓겨서 살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것 같다고. 의지대로 사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건지 몰랐는데, 가끔은 내 의지가 뭐였는지도 의심된다고. 의심하는 게 습관이 되니, 무엇하나 시작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나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살아갈 그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응원을 보냈다. 쫓기듯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고민의 시간과 현장이 증거라고.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차마 청춘을 즐기라는 말은 내보내지 못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이들 덕에 사회가 굴러간다는 순리를 때때로 잊는다. 안정과 행복을 ‘학업’과 ‘돈벌이’로 연결 지으며, 아들에게 지레 겁을 주기도 했다. 균형 잡힌 세상이 주는 안정과 행복을 공평하게 누려야 한다 생각하지만, ‘나’ 또는 ‘우리’는 뒤처지면 안 된다며 몰아붙였다. 각자 인생의 사연과 목적을 배제하고, 그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로 결론 내는 어른들을 증오하면서도 동조하는 나 같은 어른은 수시로 흔들린다.


‘내일의 꿈과 어제의 후회 사이에 오늘의 기회가 있다.’ 말처럼, 후회와 꿈 사이 기회를 붙잡으려 아등바등 살아간다. 유독 열심히 살기로 유명한 한국인. 그러한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열심히 사는 게 ‘정상’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상이란 걸 잊은 채.


왜 열심히 살아야 남들처럼 살 수 있는 건지 묻기 전에,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으려면 그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세뇌당한다.


묻고 싶다.


‘열심히’란 기준에서 ‘남 보다'가 빠지면, 느긋하게 살아도 군소리 듣지 않고 살 수 있게 되는 건지. 지금의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건지.


물질과 정서의 불균형을 뼈저리게 경험 중인 세대. 열심히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세대. 그 세대가 한 치의 어긋남 없는 견고한 세상을 켜켜이 쌓아 올렸다. 한 조각이라도 흐트러지면 볼품 없어지는 숨 막히는 완벽을 강요하는 세상. 그러한 세상을 천국이라 말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예쁜 지옥’에 가뒀다.


자신만의 천국을 발견하는 청춘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그래서 열심히 살면, 누구나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신화와 같은 말이 부활했으면 한다. 부디 희망이란 이름으로, 그들이 만든 예쁜 지옥에 자신 또는 자신의 아이들을 가두는 일이 없도록. 들려온 말에서 내뱉고 싶은 말이 구구절절 이어졌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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