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이란 결핍, 고독이란 선물

너를 품어도 되고, 남에게 기대도 돼

by 아는이모

언제부터 혼자가 더 편했을까?

혼자인 시간을 간절히 원했을까?


머릿속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을 쯤이었나.


삐지고 우기기를 밥 먹듯이 하던 난 툭하면 난 엄마에게 ‘외동딸로 만들어달라.’는 이상한 떼를 썼다.


어렸던 난 우기다 보면 외동딸이 되는 줄 알았다. 콘센트 속에 만화 캐릭터가 산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고 엉뚱하며 귀여웠다. (증거자료 제출 가능) 이미 생겨버린 언니와 동생을 다시 뱃속으로 넣어달라는 터무니없는 투정은 당연히 무시당했다. 천지신명도 삼신할머니도 감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인 줄도 모르고 산타 할아버지 그리고 생일날 촛불에게 외동딸로 만들어 달라는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다.


살가운 챙김을 받기 힘든 둘째의 운명을 타고 이유로, 내 몫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도드라지게 불평과 불만을 표현했다. 배알이 꼴리면 밥을 먹지 않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집안에서는 못 돼먹은 아이, 밖에서는 웃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은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굳이 알아버렸다.


불행과 고통은 물론, 행복과 기쁨마저도 함부로 나누는 게 아니란 걸.

누구든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몫이 있다는 걸.


아들 없는 집에서 너라도 장남 노릇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이왕이면 언니(나의 언니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몫까지 효도를 하라는 어른들의 시선과 말끝에서 기대를 읽었다.


아이에서 숙녀가 됐을 무렵, 좁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웠다. 상처의 무게를 말할 수도, 함께 나눌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기대는 게 두려웠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클까 봐. 애써 기대한 반응이 고작 회피와 거부일 까봐. 출구 하나를 마련해 두고 사람을 만났다. 버림받을 가능성을 재며 혼자여도 괜찮다는 믿음을 견고히 쌓았다.


티 나지 않게 선을 긋고, 벽을 세우며 혼자가 될 시간을 대비했다. 애써봤자 우린 새드엔딩일 거라고 일찌감치 결론을 냈다. 기대고 싶은데 기대고 싶은 사람이 없을 때, 아니 기대려는 생각을 접어야 할 때, 아무도 없는 방에서 라디오를 켜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고요한 적막이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밀어냈다. 세상의 수많은 사연과 노래가 그럴듯한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증명했다. 전파와 함께 실려온 목소리에서 낯설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닌 혼란스러운 세상을 견디려면, 은둔의 시간을 치러야만 했다. 햇빛을 봐야 비타민D가 합성되듯 혼자 있어봐야 온전한 나로 여물어 갈 수 있었다.


혼자인 시간을 통해 마음의 연골을 채워갔다. 고독의 시간을 즐긴다는 사실이 또렷해질수록, 공허함으로 착각했던 시간에 너그러워질수록,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배워갔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느껴질 때 그제야 나를 받아들였다. 고통과 아픔 따위는 말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멈추고, 작고 평범한 불행을 꺼내놓으며 선을 지우고 벽을 허물었다.


혼자서도 함께라도 즐거울 수 있다고. 지난날의 너를 품고 기대도 된다고 당당히 내게 말했다.


기분 좋은 메시지를 속삭이며 나를 달래는 고요한 시간이 보낸 덕분이다.


독립성이 뛰어나다는 말이 듣기 좋았던 이유가 고독을 즐기는 일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도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예고 없이 들이닥쳐 주저앉게 만드는 고립을 경계하며, 삶의 매 순간 나만의 평화와 고요를 지켜내려는 것뿐이다.


나를 달래던 일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형태로 고독을 즐겨 볼 참이다. 나를 즐겁게 만드는 감각을 곤두세우며 걷고, 쓰고, 음미하며, 혼자인 시간에 나에 대한 기대를 낮추지 않고 기댈 곳을 찾는 희망도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고립이라는 포장지에 똘똘 뭉친 결핍을 내려두고, 고독이란 선물을 꺼내 봤으면 한다.


혼자인 게 낯설고 두려울수록, 고독이 주는 선물을 흔쾌히 받았으면 한다. 그리고 구겨진 영혼을 곱게 펴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왕이면 따뜻한 스팀과 함께♡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keyword
이전 16화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세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