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개다 든 생각

포삭한 이불과도 같은 무한한 안정을

by 아는이모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에 한기가 느껴진다. 작년에 새로 산 하얀 차렵이불을 꺼냈다. 가볍고 포근한 이불을 꺼내어 덮고 잔 날은 헛된 바람을 품는다.


누구도 날 깨우지 않았으면,

아침을 차리지 않았으면.

영원히 밤이었으면.


해가 바뀔수록 잠자리에 예민해졌다. 이불이 꿉꿉하거나, 발이 시려도, 공기가 답답하거나 건조해도 잠을 푹 잘 수가 없다. 온도와 습도에 예민한 파충류로 퇴행하고 있는 건가. 바삭한 새 이불을 꺼낸 날처럼 최적의 수면 환경이거나, 피로와 피곤으로 범벅된 날이라야 단잠을 잘 수가 있다.


수면 양말, 가습기, 공기청정기, 침구청소기 등 제대로 된 잠을 자기 위한 용품들로 침실을 채웠다. 어쨌거나 나를 ‘잘’ 재우기 위해 애쓰는 요즘이 반갑다.


어린 생명의 보호자가 된 이후, 그들에게 잠을 양보한 시간들이 있었다. 젖을 먹이기 위해,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열을 재기 위해, 발로 찬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수시로 잠을 깼다.


먹이고 입히는 일만큼 재우는 일에도 비법과 노력이 필요했다. 먹는 시간과 양을 조절했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자장가를 들려줬다. 선풍기 바람 대신 부채질을 해가며 이마와 목덜미의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베개가 흥건하게 젖었을 땐 가제 손수건을 접어 뒷머리에 끼웠다. 팔다리가 자랄 때마다 베개와 이불을 바꾸고 새 잠옷도 마련했다.


새록새록 잠든 두 아이의 얼굴에서 밤을 지새우며 살폈던 아기의 얼굴을 찾는다. 이건 밤의 세계에서만 허용된 일. 낮의 세계에서 두 아이 얼굴은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곤히 잠든 얼굴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건 그때의 얼굴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잠든 어린 얼굴들을 보며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을 꿈꾸길. 멋져 보이는 일을 꿈으로 착각하지 않고 살아가길. 이마와 볼을 쓰다듬으며 걱정 섞인 한숨도 쉬어본다. 꿈을 이뤘다고 마냥 행복해지지 않는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이루지 못할 꿈을 좇다 잃을 게 많아질 때, 햇살 가득 담은 포근한 이불을 덮고 꿨던 꿈을 생각하라고. 잠결에 느꼈던 내 품의 온기를 기억해 달라고.




나에게도 몇 안 되는 포근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아기 얼굴이 된다. 어린 날의 난, 잠이 올 때마다 엄마의 손톱을 찾았다. 크고 기다란 손가락에 동그란 손톱을 만지고 있으면 아늑한 잠에 빠져들었다.


교대근무를 하던 엄마는 나를 재우고 출근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난 엄마의 손가락을 쥐고 놓지 않았다. 내가 잠들면 사라질 엄마를 어떻게 서든 꼭 붙잡고 싶었다. 달콤하고 따뜻한 잠에 빠져들려고 할 때마다 난 손가락을 더욱 움켜쥐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떨어뜨릴 때, 엄만 어땠을까. 아들이 잠결에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그때의 엄마가 떠오른다. 마음껏 나를 안아주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엄마를. 깜깜한 밤에 외로이 출근해야 했던 엄마를.


오랜만에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딸, 전화 좀 자주 해. 엄마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슬픈 농담을 웃으며 하는 엄마의 손가락을 오래도록 붙잡고 싶다. 손가락 하나가 주던 무한한 안정을 여전히 품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무한한 안정이 되고 싶다.



매거진 <살림 생활자의 글쓰기 생활>은 글 쓰는 주부의 살림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살림, 작가들이 살린, 작가들을 살린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만난 다섯 명의 작가가 모여 쓰고 있습니다. @단미 @Jina가다 @치유의 하루 @미칼라책방 작가님들의 매거진도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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