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찬 바람이 불면 외면하고픈 것들 생각난다. 한 살 더 먹을 나이, 겨울 방학, 가스비, 그리고 김장. 하나둘 빈 김치통이 쌓일수록 올해도 잘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갑갑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김장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지만,
김장철이 다가오면 난 ‘아 ~ 몰라.’하고 떠나고픈 K-며느리이기도 하다.
갓 버무린 김치와 곁들일 뽀얀 수육과 막걸리 한잔을 생각하며 최면을 건다.‘난 어머님과 함께하는 김장이 즐겁다. 즐겁다. 즐겁다.’ 최면이 통하지 않을 땐, 김치에 대한 깊은 사고를 하기도 한다. 늘 곁에 있다가 없으면 허전한, 결정적인 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보험 같은 김치. 김치가 없으면 안 되는 식탁의 상황을 수없이 시뮬레이션하다 보면, 어느새 몸은 시댁 마당에 와있다. 고무장갑, 장화, 일 바지 - 김장 3종 세트를 착용한 채로.
김치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목격되기도 한다. 간혹 지방 일정이 생기면 시외버스를 이용하곤 하는데, 거기서 김치로 추정되는 음식을 마주한다. 몇 번이고 동여맨 분홍 보자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톡 쏘는 냄새. 나 여기 있소 광고라도 하듯 빨간 양념 자국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보자기를 볼 때면 불현듯 그녀가 떠오른다.
손톱 밑이 하얘질 틈 없이 무언가를 다듬고 다듬는 사람. 까다 만 마늘이 담겨있는 봉지를 부록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 귀해 보이는 음식은 일단 냉장고에 얼려두고 보는 나의 시어머니 이종순씨다.
종순씨의 김치 사랑은 유별나다. 육 남매 중 장녀인 종순씨는 동생들의 끼니를 걱정하다 10살 남짓한 나이에 홀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떠났다. 피아노와 미싱 공장을 전전하며 번 돈으로 동생들의 식비와 학비를 댔다. 배고파서 돈을 벌어야 했던 시대. 격동의 현대사를 견딘 그녀에게 밥과 김치는 단순히 입으로 삼키는 음식이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이자 모든 걸 걸고 지켜낸 분신이었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이 지키고 싶은 이들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것. 그것이 몇십 년 동안 그녀를 지배한 노동의 이유였다. 따사로운 햇볕이 익숙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그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얘야 파김치 담으려는데, 일 없음 와서 가져가라.”
손주 녀석들의 취향은 시원 새콤한 백김치와 양념이 덜 묻은 김치의 심지 정도라고 몇 해를 걸쳐 말해도 소용없다. 계절마다 파김치, 우엉김치, 씀바귀 김치, 무말랭이 김치, 부추김치, 오이소박이 등을 만들었다며 매번 우리를 부르고 또 부른다.
뒤늦게 알았다. 그 수많은 김치가 우리를 부르기 위한 그녀의 계획적인 핑계였던 것을. 김치는 빌미로 아들과 손주에게 ‘나’를 보러 오라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자발적인 ‘희생’을 생색낼 수 있는 수단은 김치가 유일했다.
“어머니 맛있어요. 하나도 안 짜요. 이제 거의 다 먹어가요. 애들이 이번 김치 맛있다고 난리예요. 금방 다 먹을 것 같아요. 호호호”
해가 바뀔수록 떠는 가식도 노련해졌다. 늘 피하고 싶은 시댁이지만, 일단 맛있게 시식하고 보험 같은 김치를 바리바리 싸 온다. 살림만 하다 글을 써보겠다며 아등바등 사는 내가 매 끼니를 허겁지겁 먹어도 체하지 않는 건, 종순씨가 버무려 준 김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김치 유산균)
손끝에서 쾌변 하듯 쏟아낸 글이 어떤 이들의 마음에 찌릿한 감동을 줄 때까지, 찬밥에 김치 한 조각을 입에 털어 넣으며 계속 써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 보면 이런 말을 할 날도 오겠지.
‘건강한 몸으로 글을 쓰는 데 일조한 어머님표 김치와 무한한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밑바닥을 일군 이종순 여사님께도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누룽지에 파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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